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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세계로 미래로/오늘의 인물

'0995065' 63년만에 찾은 16살 女軍의 군번

지송나무 2015. 6. 13. 10:28

 

'0995065' 63년만에 찾은 16살 女軍의 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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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참전 이현용씨, 美서 귀국
    "6·25 하루라도 희생자들 기억하길"

     



    6·25전쟁 당시 16세 나이에 여군(女軍)으로 참전했던 이현용(80·사진)씨가 63년 만에 되찾은 군번이다. 이씨는 1934년 중국 하얼빈에서 태어났다. 해방 후 가족 고향인 황해도 배천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6·25 발발 하루 전인 1950년 6월 24일 임신한 언니를 대구에 데려다 주려고 38선을 넘었다.

    그해 9월, 대구여중에 다니던 이씨는 징집 포스터를 보고 자원 입대했다. "그때는 유관순이나 잔다르크처럼 조국을 위해 당연히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여군 면접을 보러온 지원자는 대부분 대학생이나 고교생이었고 중학생은 이씨 혼자였다고 한다. 이씨는 "마침 형부의 친구가 면접관이어서 막무가내로 버텨 간신히 입대 허가를 받았다"고 했다.

    제2훈련소에서 훈련을 마친 이씨는 부산에서 시가(市街) 퍼레이드를 했는데 당시의 소총인 M1이나 칼빈은 그에게 너무 커서 권총을 차고 참여했다고 한다. 그 뒤 육군 제5병원 약제과에 배속됐다. 그러곤 전선(戰線)을 따라 평양까지 갔다가 중공군 개입으로 후퇴해 다시 부산까지 내려왔다. "병원 복도 양쪽에 깔린 가마니에 드러누워 고통스러워하는 군인들을 치료하고 약을 전하느라 종일 정신없이 뛰어다녔지요." 그 뒤 전황이 다소 안정되면서 1951년 5월 하사(현재 상병)로 전역했다. 이씨는 "고등학생이 돼 동래여고에 간 첫날 참전 표창장을 받았다"고 했다.

     
    이씨는 약학과 진학 후 졸업과 함께 결혼했지만 1974년 사별했다. 20여년 전 가족과 미국으로 이주했고 시민권도 받았다. 작년 봄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은 이씨 얘기를 듣고 참전 유공자로 신청하려 했으나 이씨가 7자리 군번 가운데 2자리만 기억해 불가능했다. 팔순 고령이 된 이씨는 올 들어 한국 국적을 되찾으려고 귀국해 육군본부에 병적 확인을 부탁했다. 육군은 지난 4일 그의 참전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이씨는 "전사하거나 부상한 분들을 생각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며 "1년에 하루 6·25만이라도 다 같이 참전용사를 생각하고 감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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