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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취미·레저생활/산행엘범

12월 1차 정기산행<구룡산:741, 관룡산:754, 화왕산;756>

지송나무 2015. 5. 20. 08:50

12월 1차 정기산행<구룡산:741, 관룡산:754, 화왕산;756>

 

 

1. 일시 : 2009년 12월 10일(목)

 

2. 회비 : 20,000원

 

 

 

3. 준비물 : 점심 및 음료수 각자 준비

 

4. 모임장소 : 대구은행 본점앞 08:30 <시간엄수>

 

5. 탑승차량 : 은색 봉고 (73너5570)

 

6. 등산로 안내

    관룡사~안부~구룡산~관룡산~670봉(점심식사)~730봉~화왕산~배바우~산불감시초소~이정표~암릉구간~전망대~말흘리 매표소  <총산행시간 약 5시간>

 

   

<.관룡사와 구룡산>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찰로서 〈사기>에의하면 349년

 

에 창건되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전설에 의하면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 절에서 100일기도를 드릴 때

 

오색채운이 영롱한 하늘을 향해 화왕으로부터 9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절 이름은 관룡사, 산 이름은 구

 

룡산이라 했다고 한다. 1401년(태종 1) 대웅전을 창건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7년(광해군 9) 영운이

 

재건했다. 1704년(숙종 30) 가을 대홍수로 금당이 유실되었으며 1712년(숙종 38) 대웅전과 다른 당우들을 재

 

건했다. 1749년 다시 부분적인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사찰 내에는 보물 제212호인 대웅전, 보

 

물 제146호인 약사전, 보물 제295호인 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519호인 석불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

 

재 제11호인 3층석탑 등의 귀중한 문화재들이 있다.

 

 

 

 

 

 구룡산  관룡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우송이 마련한 커피를 서로 나누며 몸을 더피고 있습니다.

 

 

 

 

 돌을 쌓아 조성한 일주문이 인상적이였다.

 

 

 일주문쪽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는 김형달 회장

 

 

 화왕산 관룡사 사천문

 

<신돈과 관룡사> 

 이 절을 주목하는 것은 관룡사가 신돈(?∼1371)의 사찰 옥천사라는 것이다.   

고려말 공민왕때 전민변정도감을 만들어 호족들이 보유한 토지를 농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그 시대의 엄천난 개혁을 펼친 선구자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한반도 화엄 6대사찰에는 태백산 부석사, 원주비마라사, 가야산 해인사, 비슬산 옥천사, 금정산 범어사, 지리산 화엄사였으며, 우리 불교에서 이토록 큰 위치를 점하고 있는 옥천사가 비슬산 먼 기숡인 찬녕군 계성면 옥천리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옥천사와 관룡사는 같은 절이다. 옥천리는 넓은 지역이 아니므로 나타나지 않을 이유가 없으며 관룡사 외에 어떤 대찰도 이 옥천리에는 없다.관룡사 연기문에는, 관룡사가 신라 흘해왕 때인 서기 379년에 창건되었고 한 때는 원효대사가 1천여 명의 대중을 상대로 화엄경을 화엄도량으로 신라 8대 사찰의 하나였다고 했다.

신라 6대사찰 옥천사와 신라 8대사찰 관룡사가 한 계곡에 있는데 다른 사찰이 아니고 한계곡에 있기에 옥천사와 관룡사는 같은 하나의 절이다.그러나 신돈이 죽은 1371년, 조정은 옥천사 절을 헐어 버렸다고 전해 오는데, 이 옥천사는 미스터리 절이다. 
신돈의 아버지는 이 관룡사 아래쪽 큰 고을인 영산의 호족 신씨였다. 신돈은 어릴때부터 관룡사에서 자라면서 공부를 하였다. 영산신씨는 다른 성씨들과는 달리 영산에서 발원한 토착 신씨로 지금도 전해온다.영산신씨는 고려시대와 조선에 걸쳐 큰 세력을 지닌 호족이었다.낙동강의 요지 영산에서 발원한 영산신씨는 비록 신돈으로 일시적으로 위촉되었지만 당시 신귀의 후손들이 조선개국 1등공신이 되는 등 조선에서도 번창하였다. 한국역사상 대표적 개혁자로서, 우리 역사상 불세출의 인물인 신돈이 태어난 관룡사인 것이다. 그는 호족에 의하여 망해가는 고려를 일시적이나마 되살린 인물이다.

 

 

 

비가와도 산행행사에 참여한 김형달회장, 우송, 동곡, 대곡님 감사합니다. 

 

 

 

보물 146호 관룡사약사전 유형문화재 보물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임진왜란 때 약사전만 남기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약사전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매우 작은 불당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간결한 형태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과 좋은 비교가 된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몇 안되는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작은 규모에도 짜임새가 훌륭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보물 제519호인 석불좌상

 

 

 보물 제212호인 대웅전

 

 

 

우중의 산행, 그러나 질서있게 올라갔다.

 

 

 

 

 구룡산 청용암에서 바라본 운해

 

 

 

 

 구름이 많아 잘 보이지는 않지만 절경에 감탄하는 친구들

 

 

 

 

구룡산 바위 모두가 부처님 형상이라는 청용암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구룡산 정상에서 하산 길을 찾는 친구들

 

 

뿌연 안개속에 우송선생 욕보네예!

 

 

 

이정표에서 잠깐 

 

 

 

 

 

 

 겹겹이 펼쳐진 산들 장관이였다.

 

 

 

 

관룡사 암자 청룡암에서

 

 

 

 

석조여래좌상

 

관룡사을 뒤로하고 가파른 오름길을 오른다. 대단한 급경사 길이다.

흘러내린 땀을 주체하지 못 할 정도로 땀을 흘린다. 관룡사에서 900m의 급경사를 극복하면 청룡암 입구의 약수터에 이르고.... 이곳에서 일행들은 바로 지나가고 난 40m의 거리에 있는 청룡암을 다녀 오기로.... 본체는 허름한 건물이나, 산신각과 석조 여래좌상은 볼거리...

청룡암에서 바라본 풍광이 좋았다.

 

 

오늘은 최순호 회원이  호택을 정하고 알리는 날입니다.

<최순호 호 : 지송> 담긴 의미 : 이 호는 동기 이극식 교장님이 지어준 의미있는 호로 못가의 소나무라,  못가의 큰 소나무가 되어 찾는 이의 그늘이 되어 주고,  찾는 이에게 이야기 동무가 되주자는 의미가 있읍니다. 앞으로 저를 지송이라 불러주세요. 아래 우생즐사모 회원들의 호가 있으니 호를 많이 애용해 주세요.

 

<우생즐사모 회원의 호>

권종수(우송), 기세봉<원곡>,  김진태(숙천), 김태호<제함>,  김형달<예송>, 

이수룡(거산), 이극식(한암), 이원근(공곡),  이호선<대곡>, 최규석(석암>, 최순호<지송>

 

2009.12.10.    池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