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15. 05. 15

불로그에 올린 글이 부족하나마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전통과 역사/고전·전통찾기

아버지! 저도 자손(子孫)입니다.

지송나무 2015. 7. 16. 09:32

아버지! 저도 자손子孫입니다. 

 

살아가노라면 가끔 그리운 곳이 있다.

그곳은 내가 자랐던 고향.

고향엔 날 낳아 주시고 키워주신 부모님께서 천 년 유택에 잠들어 계시기 때문에

더욱 그립고, 외로움을 달래 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땐 안부 전화라도 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이젠 그곳엔 빈집들만 허허롭게

견디기 어렵다는 아우성만 가슴에 안은 체 오랜만에 둘러본 자신을 보며

외로움을 견디다 못해 왜 이렇게 자주 들리지 않느냐고 원망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

늙어지면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이라고.

둘러본 고향엔 보고 싶은 마음을 채워줄 만한 것은 철 지난 추억뿐

내가 살던 집 역시 조금씩 아픔을 토로한 체 빈집의 허탈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구멍 뚫린 지붕의 틈새로 아무것도 모르고 내린 빗물의 흔적은 날 잡고 애원한다.

당신 어린 시절을 그렇게 잊고 사느냐며 원망한다.

 

이곳이 없었더라면 당신의 오늘이 있었겠느냐며 반문한다.

오랜만에 와서 까치발 들고 방바닥을 걸어 다니는 당신도 사람이냐고 묻는다.

문을 걸어 두었는데도 빈집인지 어찌 알고 방바닥엔 먼지가 쌓여있었다.

준비해간 수건을 들고 닦아 보지만, 방바닥은 반갑지 않다는 냄새를 풍긴다.

어쩌다 와서 겨우 한다는 짓이 자기 발바닥 오물 묻는 게 싫어서 저렇게 닦는 척

흉내 낸다며 조롱한다.

 

내가 자란 아버지 어머니의 사랑이 잠들어 있는 곳.

그만 눈시울이 붉어져 아무 말 못 하고 나오고 말았다.

자주 오가지 못한 인정은 이만큼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누워 계시는 천 년 유택에 들러 무릎 꿇고 술잔을 올리면서

아버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살아생전에 집안의 기둥처럼 아들인 나를 볼 때마다 그렇게 좋아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셨는데

오랜만에 찾아온 산소엔 꿩이 새끼를 쳐도 모를 정도의 잡초가 무성하게 아들인 날 비웃고

제멋대로 점령군 노릇을 하고 있으니 무슨 낯으로 아버지 어머닐 올려 보겠는가.

 

참 기막힌 현실이다.

일 년에 두어 번 아들이란 명색을 내세우기 위해 찾아보는 부모님의 천 년 유택에

이름 모를 풀이며 대나무 아카시아가 기세를 떨치고 있으니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특히 아카시아 나무나 대나무 뿌리는 번성하는 속도가 잡초에 비해 강해서

그대로 두었다간 산소 전체를 폐허로 만들 것으로 보였다.

 

현실로 돌아온 며칠 후,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두면 주위의 이목도 이목이거니와

부모님께 큰 벌을 받을 것 같아 나무뿌리를 제거해야 하겠다는 고민을 하는 중

가족회의를 열고 아내와 딸 아들의 의견을 듣기로 했다.

 

내 말을 듣고 현장 사진을 찍어온 걸 본 우리 딸은 아버지 당장 잘라내세요.

할아버지 성격 아시면서 그냥 두면 야단납니다.

우리 내일이라도 식구 수대로 다 달려가서 당장 잘라내고 옵시다.

할아버지 세상 떠나시고 할머니 홀로 시골에 계실 때, 산소의 모습은 언제 어느 때

가서 보아도 잡풀 하나 없이 깔끔했는데, 할머니 세상 떠나시고 칠 남매를 두신 분의

천 년 유택이 이렇다니 자식 있는 사람들이 말이 됩니까?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아버질 천금 같은 아들이라고 생각하시며 자랑스럽게 사셨는데

돌아가셨다고 바쁘다는 핑계로 이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

아들이 몇이나 있는데 서로 미루고 있다 보니 산소가 이 모양이 된 것 아닙니까.

연세 많으신 고모님들이나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연락하기엔 부담스러울 수도 있으니

우리끼리 깔끔하게 단장 합시다.

 

딸의 재촉으로 보면 산소의 심각성을 깨닫게 한다.

살아계실 때 할머니의 정이 유독 생각난다는 딸.

말씀으로만 아들, 아들 하시지 말고 아들답게 그동안 잘 해 오신 것처럼

이번에 제대로 해 놓자고 한다.

 

아들이 다시 말을 이어받는다.

아버지 저도 자손입니다.

기회를 주십시오.

견적을 넣을 때 굴착기, 잔디, 인부 모두 넣어 얼마인지 알아봐 주세요.

그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아들아, 고맙지만 넌 손자가 아니냐?” “아들인 아버지가 해야지.”

아버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제가 이 땅에 태어나기나 했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살아가는 게 할아버지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 같아 자랑스럽습니다.”

제가 사회에 진출하여 월급 받은 기념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단장비용을

책임지겠습니다.”

금액이 적지가 않을 거야.”

그동안 벌어서 모아 놓은 것 있는데 그 범위 내에서 하겠습니다.”

 

순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편 아들을 바라볼 수 없는 민망함이 부끄러웠다.

 

아들아, 내가 할아버지 앞에 아들 노릇을 제대로 못 하고 있구나.”

아니요 아버지! 아버진 잘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제가 나서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럴 때 아들 노릇 한 번 하겠습니다.”

 

아내와 난 할 말이 없었다.

언제 이렇게 성장해서 아들 노릇, 딸 노릇을 단단히 하는지 가슴 벅찬 눈물이 난다.

늘 철부지인 줄만 알았던 녀석들이 언제 다 자랐는지 대견스럽기만 하다.

가족이란 테두리에서 가족의 소중함도 알고, 조상을 섬길 줄도 안다니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한창 놀 나이고, 자기 몸치장이나 하고, 친구 만나고, 커피 마시고, 가끔 술이나 마실

나이인데, 자신을 뒤로할 줄 알고 아버지의 못다 한 생각을 메꾸어 주는 심성 곧은

기특함에 자식 농사의 알 콩 진 재미에 떨리는 목이 한쪽으론 뜨끔거리기 시작한다.

 

반면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 핑계 저 핑계로 고향엘 자주 가지 않은 결과가 이렇게 나타난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그동안 얼마나 불안하셨을까.

깔끔해야 할 봉제사해야 할 곳이 잡풀의 무덤이 되어 있었으니 죄스러움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급기야 장비와 인부를 불러 깔끔하게 단장을 해 놓았다.

조금이나마 죄스러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다.

애지중지 아들딸 낳아 무슨 큰 영화를 볼 것처럼 키웠으나 부모님 세상 등지시고

일 년에 몇 번 가기도 쉽지가 않으니 이게 무슨 사람 꼴인가 말이다.

자신의 모습이 이기적이고 한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아들이 되어 아들 가치를 못 한 것 같아 오늘따라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

당신의 배고픔도 참아가며 당신 몸보다 자식 몸을 더 소중히 여겼던 부모님.

사랑받을 때만 부모님이어서야 되겠는가.

사후 천 년 유택을 잘 돌봐 드리는 것도 효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긴다.

음력 칠팔 월이면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아 사초를 해야 하는 시기가 온다.

그때 다시 찾아뵈옵고 진초록 잔디 옷 곱게 입은 어머님 모습이 보고 싶어진다.

그때 다시 말씀드리고 싶어진다.

산소 관리 잘 못 한 죄 무릎 꿇고 빌며 용서를 구하고 싶어진다.

손자 손녀가 입혀준 새 옷이 마음에 드시느냐고?

기분은 어떠시느냐고? 여쭤볼 생각이다.

 

부모님께 죄송한 맘.

딸 아들에게 고마운 맘.

그 중간에 서서 아버지 저도 자손이라고 말한 아들의 마음을 가슴 깊이새기며

아들이 보내온 메시지를 다시 읽어본다.

아버지 작업해 주신 분께 송금 완료했습니다.

아버지 아들 든든하지 롱.”

힘내세요. 세상세서 최고로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메시지를 마음속에 새기며 이글을 맺는다. 

 

-받은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