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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전통과 역사/고전·전통찾기

팔공산 왕건길 탄생에 대한 비화

지송나무 2019. 2. 2. 18:11

팔공산 왕건길 탄생에 대한 비화

 

 

 파군재에 세운  신숭겸장군 동상

 

  왕건길 탄생의 주역인 최주원씨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왕건길 완주를 자축하면서 왕건길의 탄생비화를 간단히 소개하고 공산전투와 관련된 대구지역의 지명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 전투에서 승리한 견훤에 관련된 지명은 하나도 없고 전부 대패한 왕건에 관련된 지명만 있다는 점입니다. 당시의 이 지역민의 민심은 왕건에게 더 호의적이었나 봅니다.

 

1. 왕건길 탄생 비화

  왕건길은 오늘날 팔공산 왕건길이 만들어지는데 기초를 다진 인물은 최주원 전 대구시 농산유통과장이다. 2005년 대구시 동구 도평동 동장으로 재직하면서 고려 왕건이 남긴 발자취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듬해 동 특수시책으로 골짜기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을 재발굴하는 조사 작업과 표지판 달기 사업을 추진해 80여 개의 잃어버린 지명을 찾아내었다고 합니다.

 

  왕건이 나무꾼으로부터 주먹밥을 얻어먹고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던 시랑이마을(실왕리) 등 왕건이 지나간 평광동길 6.72005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왕건길로 정해졌습니다. 평광동길을 시작으로 왕건의 도주 흔적을 관광 프로그램으로 연결시킨 사례는 이후 계속 이어졌습니다. 왕건길 체험 걷기행사가 대구녹색소비자연대의 대구올레길 시발점이 됐고, 이후 대구 동구청이 국토해양부의 누리길 지원사업으로 8개 코스의 팔공산 왕건길이 탄생되었다고 합니다.

 

  2. 왕건과 관련된 대구의 지명

  공산전투는 서기 927년에 현재의 대구광역시에 속해있는 팔공산 일대에서 벌어진 후백제와 고려 사이에 있었던, 커다란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왕건이 이끄는 고려군은 대패하여 장군이었던 신숭겸, 김락 등을 비롯한 많은 병사들이 전사하고, 왕건도 일반 병사들의 복장으로 변복하고, 신숭겸이 목숨을 바친 결과로 겨우 몸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과정에서 왕건의 일거수일투족이 반영된 대구지역의 지명들입니다.

 

  ★ 팔공산 : 김유신 장군이 통일구상을 하면서 수행했던 곳이며, 고려태조 왕건이 견훤과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원래의 명칭은 공산이었는데 신숭겸을 포함한 고려 개국공신 8명을 기리기 위해 팔공산이 됨.

 

  ★ 초례봉 : 왕건이 영천 태조지에서 패해 다음 전투에서 이기게 해달라고 제를 지냈다고 하는 전설이 있음. 왕건의 도피로가 시량이마을에서 초례봉, 안심으로 이어졌다면 지금의 왕건길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시량이마을에서 초례봉, 안심으로 이어지는 길은 새미기재를 거처 낙타봉, 초례봉, 안심으로 가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길이기 때문이다.

 

  ★ 무태 : 현재 대구시 북구 동·서변동을 일컫는 지명으로 왕건이 병사들에게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며 태만하지 말라고 독려한 데서 생긴 이름.

 

  ★ 나팔고개 : 이 고개는 무태·연경과 지묘동 사이, 동구 지묘1동과 지묘3동 사이에 있는 고개로 후백제 군사들이 신숭겸을 왕건 대장인 줄 알고 목을 베어 전승 기념 나팔을 불며 넘어온 고개라 하여 붙여진 이름.

 

  ★ 살내(전탄) : 동화천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두 물머리 부근으로 왕건군과 견훤군이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전투를 벌이니 화살이 물속에 쌓였으므로 이런 이름이 생김. 현재 살내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다.

 

  ★ 미리사 : 지묘동에 있었던 절로 태조가 원군 5천을 이끌고 미리사 앞에서 견훤군과 싸워 대패하자, 장군 신숭겸이 왕의 전복으로 바꿔 입고 견훤군을 유인했다가 전사했던 곳.

 

  ★ 안심 : 왕건이 파군재 부근에서 대패하여 쫓기던 중, 이 지역에 도달하여 환성산 줄기의 초례봉 쪽으로 피신하여 날도 새고 적의 추격이 없으므로 숨을 돌리게 되니 이 곳을 안심으로 부르게 됨.

 

  ★ 반야월 : 왕건이 견훤군사에 패하고 이곳을 지나다가 하늘을 보니 중천에 반달이 떠 있어서 반야월이라 했다고 함.

 

  ★ 돈지봉 : 현재 조일로봇고와 정동고교가 이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돈지봉은 숨은 터가 있는 봉우리란 뜻으로 팔공산에서 도피한 왕건이 잠시 몸을 숨겨 '돈지라는 이름이 전해옴.

 

  ★ 연경 : 현 대구시 동구 연경동 지역으로 무태에서 동화천을 따라 북동쪽으로 나아간 곳에 위치한 촌락 명칭인데, 왕건이 이 곳을 지날 때 마을 선비들이 글을 읽는 소리를 듣고 지은 이름.

 

  ★ 왕산 : 고려 태조가 견훤에게 패배하여 이 산에 숨었던 데서 왕산이라는 이름이 유래. 대구지묘초등학교 서편에 있는 산으로 표기된 지도도 있고 신숭겸장군유적지 뒷산으로 표기된 지도도 있어 헷갈린다. 개인 생각으로는 후자가 맞는 것 같다.

 

  ★ 파군재 : 신숭겸의 군사가 제1차로 파해서 흩어진 곳을 아래 파군재라 하고, 2차로 파한 곳을 윗 파군재라 부르게 됨. 동화사와 파계사로 가는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 파군재에는 신숭겸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음.

 

  ★ 지묘동 : 신숭겸과 김락이 왕건을 구하기 위해 옷을 바꿔 입어 왕건을 무사히 도망가게 한 묘한 지혜를 짜낸 곳이라 하여 지묘동이 됨, 지묘동에는 신숭겸 장군 유적이 있음.

 

  ★ 독좌암 : 봉무동 토성 기슭에 있는 바위로 도주하던 왕건이 파군재를 넘어 지금의 마을 입구 큰 바위가 있고 옆에 옹달샘이 있어 물을 마시고 그 바위에 홀로 잠시 앉았다가 해안방향으로 탈출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음.

 

  ★ 시량이마을 : 평광동의 한 자연촌락의 이름. 왕건이 나무꾼에게 주먹밥을 걸식하고 사라졌기에 실왕리라는 지명이 되어 내려옴. 지금은 시량이마을로 불리고 있음.

 

  ★ 은적사 : 앞산의 사찰 이름. 왕건이 도망치면서 몸을 숨겼다는 데서 유래하며, 이곳에 태조 18(936) 영조스님이 절을 세워 은적사로 불렸다고 함.

 

  ★ 안일사 : 현 대구시 남구 쪽에 있는 앞산의 사찰 이름. 도주하던 왕건이 이곳에서 편히 쉬었다 갔던 데서 유래.

 

  ★ 왕정과 장군수 : 왕정은 '안지랑골'에 남아 있는 우물로서 왕건이 이 물을 마셨던 데서 유래한다고 하며, 이 왕정의 물을 장군수로 부름.

 

  ★ 임휴사 : 달서구 상인동의 앞산기슭에 있는 사찰로 왕건이 쉬어갔던 데서 유래.

 

  ★ 해안 : 왕건이 견훤의 포위망을 벗어난 뒤 이제 살았다싶어 얼굴을 펴고 웃음을 띠기 시작했다는 데서 유래.

 

  ★ 불로동 : 왕건이 파군재에서 참패하여 후퇴하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노인과 부녀자들은 모두 피난 가고 어린아이 등 젊은 사람만 살고 있는 동네라 하여 붙여진 이름.

 

  ★ 왕굴 : 안일사에서 약 500m 정도 떨어진 앞산 기슭에 있는 자연 동굴로 왕건이 며칠간 숨어 지내던 동굴.

 

  ★ 도원동 : 앞산에 숨어 있던 왕건이 현재 대구 달서구 도원동 일대에 오니 복숭아꽃이 만개했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

 

  ★ 일인석 : 왕건이 왕산을 거쳐 동화사 뒤의 염불암에 피신하여 앉았던 바위.

 

  ★ 탑들 : 지금의 지묘 1동 앞들을 탑들이라고 하는데, 옛날 공산대전에 전사한 신숭겸장군의 원찰인 지묘사의 탑이 남아 있던 곳이라는 데서 연유.

 

  ★ 대비사 : 왕건이 시량이에서 신숭겸의 죽음을 알고 크게 울어서 대비가 됐고, 후에 대비사란 절이 이곳에 세워졌다 함.


  ★
여희골 : 남구 대명 7동의 자연부락. 왕건이 전쟁으로 앞산까지 왔다가 군사들이 종지골에서 승리를 거두고 난 뒤 왕과 재회하고 축하연회를 가진 곳이라 하여 처음에는 연회골이라 하였는데 변음 되어 여희골로 불리어 전해지고 있다 .

  ★
복현동 : 견훤이 신라에 침입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경순왕을 세워 신라의 왕으로 삼고 돌아가는 길에 군사를 이곳에 매복 시켰다가 추격해 오는 고려 왕건의 군대를 맞아 금호강을 사이에 두고 싸워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후 이곳은 견훤덤또는 복현암’, ‘복현리라 불리어졌다고 한다.


  ★ '가는봉', 가느봉’ : 연경동 앞의 동화천을 건너 갈봉산을 말한다. 이곳에는 왕건이 견훤과의 싸움에 패한 뒤 신숭겸 장군과 헤어져 달아나다가 다급한 나머지 말채찍을 떨어뜨린 것이 거꾸로 꽂혀 나무가 되어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또 왕건이 갔다고 하여 가는봉이라는 산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 달비골 : 팔공산대전에서 대패한 왕건이 이곳저곳을 거쳐 현재의 임휴사 자리까지 와 잠시 쉬고 있을 때, 당시 마침 보름쯤이었던지 크고 둥근 달이 떠올라 앞을 바라보는 자신의 등 뒤에서 달이 비추는 골짜기라 하여 달배골이라 칭하였는데, 경상도식 호칭이 가미되어 달비골이 되었다는 설이다.

 

  최주원 전 대구시 농산유통과장은 공산전투와 왕건과 관련된 80개의 잃어버린 지명을 찾아내었다고 하였으나 다는 알 수가 없어 일반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30여 개만 찾아 소개하였습니다

<자료 제공 : 공곡 이원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