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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행복생활/질병 · 병원

"만성 통증, 어르고 달래며 함께하는 ‘친구’로 삼아야" [헬스조선 명의]

지송나무 2023. 10. 8. 19:44

"만성 통증, 어르고 달래며 함께하는 ‘친구’로 삼아야" [헬스조선 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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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09.25 07:0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만성 통증 명의'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심재항 교수

통증은 사소하지 않다. 몸에 무언가 이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기 때문이다. 이에 맥박수, 호흡수, 체온, 혈압에 이어 제5의 ‘바이탈사인(Vital Sign, 활력징후)’이라 불리기도 한다. 통증이 사소하지 않다면, 만성 통증은 더더욱 그렇다. 만성 통증은 ‘만성 난치성 통증(R52.1)’ ‘기타 만성 통증(R52.2)’ 등의 이름으로 질병 코드가 등재된 엄연한 질환이다. 당연히 치료가 필요함에도 ‘버티면 낫겠지’하며 치료받지 않는 환자가 많다. 만성 통증의 조기 치료가 왜 중요한지,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심재항 교수(대한통증학회 재무이사)에게 물어봤다.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심재항 교수./사진=한양대구리병원 제공
- 우리 몸은 통증을 어떻게 느끼나?
우리 몸 곳곳엔 척수에서 뻗어나온 감각신경이 퍼져 있다. 이들이 받아들인 자극은 척수를 타고 올라가, ‘척수시상로(Spinothalamic tract)’라는 통증 중추를 거쳐 대뇌 피질로 전달된다. 이렇게 신체 말단에서 받아들인 통증 신호가 뇌에 도달하면 통증을 느끼게 된다.


- 만성 통증은 무엇이며, 크게 어떤 유형으로 나뉘나?
3~7일 지속되는 급성 통증과 달리, 3개월 이상 지속되는 통증을 만성 통증이라 한다. 상처가 다 나았다면 통증이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통증이 지속된다면, 이 통증은 정상적인 게 아니라 ‘병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만성 통증은 어떤 경우에든 생길 수 있다. 부러진 뼈가 붙은 후에 생기기도 한다. 뼈가 부러지며 그 부근의 감각신경이 함께 손상되면, 이 신경이 이어진 척수와 대뇌가 작은 자극에도 과민반응한다. 통증이 아닌 것도 통증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를 ‘신경성(신경병성) 통증’이라 한다. 근골격계질환에 의해서도 많이 생긴다. 관절염으로 인한 무릎 통증이 몇 년씩 가는 사람도 있고, 척추 중앙의 공간이 좁아져 척수가 눌리는 척추관협착증 탓에 만성 통증이 생기기도 한다. 암 환자의 60~80% 정도는 통증을 느끼는데, 이 역시 거의 만성 통증이다.

- 급성 통증이 발생하면 최대한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는?
급성 통증은 원인이 해결되면 자연스레 사라진다. 그러나 선천적으로 통증에 예민하거나, 감각신경을 다친 경우 급성 통증이 만성 통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친 감각신경이 제대로 낫지 않으면, 감각신경-척수-척추치상로-대뇌피질에 이르는 통증 전달 신호 체계가 과흥분된다. 그럼 이상한 통증 신호를 스스로 발산하거나,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흥분한다. 과흥분 상태에 이르기 전에 치료해야 한다. 통증 신호 체계가 생리적으로 완전히 변해버리면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가 없다.


- 몸에 별다른 이상이 관찰되지 않는데도 통증을 느끼는 환자는 어떡하나? 
실제로 이런 환자들이 마취통증의학과에 많이 온다. 다른 진료과에서 컴퓨터 단층 촬영검사(CT), 자기공명영상(MRI)을 비롯한 온갖 검사를 했는데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은 환자들이다. CT, MRI는 몸의 해부학적 이상을 잡아낸다. 해부학적으로는 이상이 없는데, 몸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통증이 생기는 경우엔 검사 결과에 이상이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럴 땐 근전도 검사, 체열 촬영, 땀 분비 검사 등을 추가로 시행해, 어떤 기능적 이상이 통증을 유발하는지 알아내야 한다.


다만, 검사에만 의존해서 원인을 찾긴 어렵다. 마취통증의학과 진료엔 환자에게서 증상을 직접 듣는 문진이 굉장히 중요하다. 증상과 관련있는 부위를 의사가 눈으로 확인하는 ‘시진’, 직접 만져보는 ‘촉진’도 적극 활용한다. 만성 통증 중에서도 신경성 통증은 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으로 나오는 때가 많다. 이럴 땐 문진을 통해 가능한 원인의 실마리를 잡아내고,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 만성 통증을 관리하기 위해 어떤 약물을 사용하나?
처음엔 일반적인 진통제를 사용하고, 통증이 극심한 경우엔 마약성 진통제를 쓴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진통제 사용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통증 점수가 7점 이상일 때 강한 마약성 진통제를 쓰게 돼 있다. 우울증 증상을 보이는 환자는 항우울제를, 신경성 통증 환자에겐 항전간제를 같이 쓰기도 한다. 항전간제는 뇌전증 발작 치료에 이용되는 약이지만, 통증 완화에도 쓰인다. 세포들의 신호 전달에 관여하는 칼슘 채널을 막아, 통증 신호 체계가 과민 반응하지 않도록 차단해주기 때문이다.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심재항 교수가 '척수 신경 자극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은 척추에 신경 자극기를 삽입한 환자./사진=한양대구리병원 제공
 
- 약물로 해결되지 않는 통증은 어떻게 조절하나?
만성 통증 초기라 감각신경만 변형된 상태라면 약물로 거의 해결된다. 이땐 변형된 신경이 약간씩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감각신경을 넘어 척수까지 변형되면 약만으론 통증 조절이 힘들다. 이럴 땐 ‘척수 신경 자극기’를 심어 통증 전달 경로를 차단하기도 한다. 내 환자 중 한 명은 다리에 복합부위통증증후군(신체 한 부분에 극심한 통증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질환, CRPS)이 발병해, 척추 부위에 ‘척수 신경 자극기’를 이식했다. 이 기기는 다리에서 올라오는 통증 신호가 뇌까지 올라가지 못하도록 척수 단계에서 차단한다. 뇌까지 신호가 안 가면 환자는 통증을 느끼지 않는다. 몸에 함께 이식한 전기선을 통해, 일주일에 한 번씩 몸 바깥에서 기기를 충전할 수 있다.


약물을 쓰되, 일반적 혈관 주사와 투여 방법을 달리하기도 한다. 바로 ‘척수강내 약물 주입술’이다. 척추뼈 가운데엔 ‘척수강’이란 공간이 있고, 여기로 척수가 지나간다. 척수는 ‘경막’이란 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경막과 척수 사이를 뇌척수액이란 액체가 메우고 있다. 가느다란 관으로 경막을 뚫고 뇌척수액에 약물을 곧바로 투여하면, 혈관 주사보다 약물 사용량을 1/100로 줄일 수 있다. 약을 아주 조금만 써도 진통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럼 약물을 자동으로 투여하는 기기를 환자가 몸에 휴대할 수 있다. 약이 다 소진되면 1~3달에 한 번 정도 몸 바깥에서 약물을 보충하면 된다. 보통 마약성 진통제를 넣어서 암환자에게 많이 사용한다.

신경차단술도 고려해볼 수 있다. 신경차단이란 표현 탓에 ‘신경을 자른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그렇진 않다. 통증이 있는 부위와 관련 있는 감각 신경만 마취시키는 시술이다. 척수를 넘어 뇌까지 변형됐다면, 신경외과 수술로 환자의 통증과 관련된 뇌 뉴런 일부를 사멸시키기도 한다. 다만, 지금의 기술로는 표적 뉴런만 죽이는 게 불가능해서, 표적 주변의 뉴런까지 같이 죽는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서 통증이 극심한 환자에게만 하는 수술이다. 

- 환자의 통증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방법이 있나?
통증 감각은 사람마다 민감도가 천차만별이다. 완전히 객관화하는 방법은 아직 없다. 부교감신경의 활성화 정도를 통해 환자의 통증을 수치화한 기계가 있지만, 이조차도 편차가 심하다. 그래도 환자가 의사에게 본인의 통증 강도를 전달할 때 사용할 여러 방법이 고안돼있다.


첫째는 ‘숫자통증등급(NRS)’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얼마나 아프냐고 물으면, 환자가 1(최저 강도)~10(최고 강도) 사이의 숫자로 강도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시각통증등급(VAS)’라는 방법도 많이 쓴다. 통증의 점진적 강도를 나타낸 그래프에서, 환자가 본인의 통증이 위치한 곳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래프를 뒤집어 보면 숫자가 적혀 있다. 의사는 환자가 가리킨 위치에 대응되는 숫자를 보고 고통의 크기를 가늠하게 된다. 진료실에서는 이 둘이 가장 자주 사용된다.

- 환자가 의사에게 통증을 잘 설명하는 방법이 있다면?
추상적으로 ‘엄청 아프다’ ‘조금 아프다’라고만 말하기보다, 본인의 통증이 지니는 특징을 상세히 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통증 최초 발생 시기 ▲자세·시간 등 통증을 강하게 또는 약하게 하는 요인 ▲통증 부위 ▲통증 강도 ▲통증 양상 등을 평상시에 관찰해서 기록해둬야 한다. 통증 양상이란 말 그대로 통증이 나타나는 방식이다. ‘옷깃이 스치기만 해도 찌릿하다’ ‘고춧가루를 뿌린 것같이 아프다’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이다’ 등 다양할 수 있다. 이런 양상을 설명해주면 신경성 통증을 진단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심재항 교수./사진=한양대구리병원 제공
 
- 어떤 때에 마취통증의학과 방문을 권하나?
아무리 치료해도 낫지 않는 통증이 있다면, 마취통증의학과 병원, 특히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의 마취통증의학과를 방문해보는 게 좋다. 엑스레이, CT, MRI 등 검사를 진행하는 것보다 문진·촉진·시진이 더 중요한 환자들이 있다. 마취통증의학과는 다른 진료과보다 환자를 오래 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편이다. 증상을 자세히 들을 수 있으니, 검사상 이상이 관찰되지 않는 환자들의 통증 원인을 찾기 유리하다. 또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들은 정말 다양한 사례를 접한다. 온갖 진료과를 전전했는데도 통증 원인을 찾지 못한 환자들의 진료 의뢰가 마취통증의학과로 오기 때문이다. 이에 ‘원인을 알기 어려운 통증’의 원인을 찾아내는 노하우가 누적돼있다.


마취통증의학과는 통증의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해결하는 과다. 원인을 해결할 수 없을 땐 통증을 최소화해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치료한다. 부러진 다리가 붙은 자리가 계속 아플 땐, 변형된 감각신경을 치료한다. 나이 들며 생긴 관절염과 척추관협착증이 원인이라면, 퇴행성 질환의 진행을 지연시켜 증상을 완화한다. 사라지지 않는 암이 있다면, 약물 투여 기기를 이식하는 등의 치료를 통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다. 단순히 진통제만 쓰는 과가 아니다.

- 통증 관리 잘하는 병원을 찾을 때 참고할 기준이 있나?
정형외과, 신경과 등 다른 진료과와 마취통증의학과 간의 협진이 원활한지 봐야 한다. 가끔 허리나 등이 계속 아픈데, 밤에만 통증이 있다는 노인 환자가 찾아온다. 그럼 나는 환자를 내과로 먼저 보낸다. 이런 증상을 보이는 환자가 1년에 1~2명은 내과 질환인 다발성 골수염 환자로 판명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타과에서 마취통증의학과로 환자를 보내거나, 마취통증의학과에서 타과로 환자를 보내야 하는 경우가 잦다. 협진이 잘 되는 병원이어야 환자가 본인에게 맞는 치료를 받을 수 있다.


- 만성 통증을 관리할 땐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통증을 뿌리 뽑겠단 마음을 버리자. 어르고 달래며 ‘함께 간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만성 통증은 완치되는 게 아니다. 나이 들며 생긴 관절염이나 척추관 협착증은 퇴행성 질환이라 계속 진행될 수밖에 없다. 치료하면 증상이 완화되고 진행 속도가 더뎌지지만, 생기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내 환자 중 한 명은 70세까지도 북한산을 오를 수 있었는데, 갑자기 척추관 협착증이 생겨 20m도 못 걷게 됐다. 치료를 열심히 해서 300m 정도 걸을 수 있게 됐다. 환자는 “내가 북한산도 오르던 사람인데, 300m밖에 못 걸으면 치료된 게 맞냐”고 하지만, 이는 분명 개선된 것이다. 병이 생기기 전의 상태로 되돌리는 게 아니라, 병이 있어도 일상생활이 어렵지 않게 하는 게 치료 목표기 때문이다. 또 섬유근육통(뚜렷한 이유 없이 전신 근육에 통증이 생기는 질환)은 평생 간다. 환자가 스트레스로 몸 상태가 나빠지면, 갑자기 통증이 심해져 입원하게 된다. 이럴 때마다 절망하지 말고, 몸이 회복되면 또 괜찮아진다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봤으면 한다. 마음을 비워야 환자 본인이 편해진다.


 
한양대구리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심재항 교수./사진=한양대구리병원 제공
심재항 교수는…
한양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를 취득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대표 학술지인 Korean Journal of Anesthesiology(KJA)에 꾸준히 논문을 발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도 대한마취통증의학회 국제 학술대회에서 KJA 우수논문상을 받았다. 현재 대한통증학회 재무이사를 지내고 있다. 환자의 이야기를 듣는 ‘문진’을 중요시해 환자와의 유대관계가 깊다. 이에 수년간 그와 함께 통증 관리를 해온 환자가 많아, 몇몇 환자들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라고 한다. SBS 의학 드라마 ‘의사 요한’의 자문의로 참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