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15. 05. 15

불로그에 올린 글이 부족하나마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이시대의 스타/예능·기타(etc)

[디패Go] "연기神도 공부하죠"..정도전, 왜 사극 어벤저스일까?

지송나무 2015. 6. 17. 13:38

 

 

[디패Go] "연기神도 공부하죠"..정도전, 왜 사극 어벤저스일까?

 
분명, 안재모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 정말…. 유동근 선배님 눈도 못 마주치겠어요."

유동근의 불꽃 카리스마 때문이랍니다. 그럴 만도 합니다. 한데 엄살이었나요? 유동근의 얼굴을 똑바로, 그것도 편안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호랑이 눈빛을 마구 쏘아 붙이는데도 말이죠.

또 이상합니다. 유동근의 말투가…. 이를 받아치는 안재모도 마찬가집니다.

잠시, 둘의 대화를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유동근

: 걱정마라. 나, 이 정도로는 안 죽는다.

안재모

: 아무래도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속히 도성으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미스테리한 건 또 있습니다. 두 사람의 옷차림입니다. 유동근은 체크 셔츠를, 안재모는 카디건을 입었습니다. 화룡점정은 쪼그려 앉은 자세. 지금까지의 말투, 눈빛과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혼란스러운 그 때, 안재모가 변명(?)을 합니다.

"연기할 때, 그 때라면 (눈을 마주치는 게) 가능해요."

"그리고 지금은, '정도전' 리허설 현장입니다."

여기는 수원, KBS 드라마 제작센터입니다. KBS-1TV '정도전' 촬영이 한창입니다. 매주 화·수요일은 이곳에서 세트 촬영을 합니다. 그 뜨거운 현장, '디스패치'가 찾았습니다.

'정도전' 세트장의 하루는 분장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이곳에서 타임슬립이 이루어집니다. 2014년을 순식간에 고려 말로 옮겨 놓죠.

여기서 잠깐, 깜짝 퀴즈입니다. 위 배우가 붙인 수염은 누구의 것일까요?

감이 잘 안온다고요?

사진 속 주인공을 보면, 윗 수염은 얇고 숱이 적습니다. 덕분에 강렬하면서 날카로운 분위기가 풍깁니다. 좀 더 힌트를 드리면, 사진의 주인공은 훗날 조선의 3대 왕이 됩니다. 눈치채셨죠?

정답은 이방원, 다시 말해 안재모입니다. 수염을 붙이니 눈빛부터 달라집니다. 내꺼같은 내꺼아닌 내꺼같은 수염, 어떻게 붙일까요? '이지란' 역을 맡고 있는 배우 선동혁이 시범에 나섭니다.

step1 : 턱과 인중에 풀을 바르고

step 2 : 빛의 속도로 턱수염을 붙인 다음~

step3 : 인중 위에 붙이면, 끝!

"빗으로 마무~으리!"

수염만 붙이면 분장 끝이냐고요? 아닙니다.

나이에 따라 희끗희끗 흰머리도 필요한데요. 칫솔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 없습니다. 칫솔에 물감을 뭍혀 한 올 한 올 칠하면 순식간에 흰머리 완성.

"이건 수염이요~"

"이건 가발이구려"

분장실 옆에는 의상실이 있습니다. 수많은 옷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습니다. '정도전'에 쓰이는 한복, 갑옷, 신발 등도 이곳에 있습니다. 이만하면, 없는 게 없는 사극 백화점아닌가요?

"골라입는 재미"

"어그부츠 아닙니다"

그 사이 배우들은 메이크업을 끝내고 의상을 갈아입었습니다. 비포 & 애프터로 감상하세요.

"유동근 → 이성계"

 
"임호 → 정몽주"

"안재모 → 이방원"

"선동혁 → 이지란"

이제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됩니다. 이날 촬영 장면은 이성계와 정몽주의 대립입니다. 이성계(유동근 분)가 정몽주(임호 분)의 멱살을 잡고 잔뜩 날이 선 대화를 나눕니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분주하게 움직이던 스태프들도 일시 정지. 모두 숨을 죽이고 유동근과 임호의 연기를 지켜 봅니다. 유동근이 먼저 포문을 엽니다.

"야, 정몽주!"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있는기니?"

"이성계의 움짤 카리스마"

강병택 PD의 '컷' 소리에 현장은 다시 분주해집니다. 스태프들은 어지러진 소품을 제자리로 돌려 놓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유동근과 임호는 연습, 또 연습에 빠졌습니다.

"일단 목부터 축이고~" (유동근)

"형님, 빨리 오세요" (임호)

"멱살잡이 리얼했니?"

잠시 후 조재현이 등장했습니다. 감옥신입니다.

대사는 없었지만 몰입도는 최고였습니다. 두 눈을 감고 입술은 잘근 깨물었습니다. 그 역시 연습 삼매경입니다. 스태프가 밧줄을 체크하는 순간에도 표정을 가다듬습니다.

"조재현이 포박됐다"

"정도전에 완벽빙의"

'사극' 어벤저스는 달랐습니다. 그 흔한 NG도 거의 없었습니다. 역시 연기신(神)들의 모임입니다. 이처럼 완벽한 연기를 만들어 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현장에서 짚어봤습니다.

ⓛ 리허설도 실전처럼=

리허설이 곧 실전이었습니다. 카메라가 없어도 100%의 연기력을 쏟아냅니다. 혼자 있을 때는 표정 연기에 집중했고, 2명이 모이면 합을 맞추느라 바빴습니다.

 
"불꽃 눈빛, 정몽주"

"성니메들의 폭풍열연"

"이것은 수면연기"

② 대본 삼매경=

연기의 신이니까, 타고난 줄 알았습니다. 한 번 뚝딱 읽고 해내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배우들, 틈만 나면 대본을 봅니다. 메이크업을 할 때도, 옷매무새를 가다듬을 때도, 수시로 대본을 보며 감정을 잡습니다.

"대본이 답이다"

"읽고 또 읽고"

 
"무조건 읽어라"

"이일화도 끊임없이~"

"빨간펜, 밑줄 쫙~"

③ 공부, 또 공부=

유동근은 틈만 나면 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옆에 서서 대화를 주고 받는데요. 자세히 보니, 북한 사투리의 1인자, 단국대학교 백경윤 교수입니다. 백 교수앞에서는 카리스마 유동근도 순한 학생에 불과했습니다.

백경윤 교수에 따르면, 유동근은 열혈 학생이랍니다. 사투리 공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고 하네요. 사투리로 대사을 연습하다,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수시로 전화를 건다고 귀띔했습니다.

"아마 함경도 사투리는 외국어처럼 느껴질 겁니다. 그걸 연기로 보여주니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습니까? 유동근 선생님은 정말 열정적입니다. 독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하죠. 역시 대배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경윤 교수)

'정도전'의 인기비결, 다름아닌 연기신들의 노력이었습니다. 배우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도전'의 매력 포인트를 물었습니다. 명품 연기, 탄탄한 스토리, 흥미로운 전개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연기고수들이 모였습니다. 판권 수출 때문에 아이돌을 투입하는 일도 없죠. 그러니 구멍이 없죠. 여기에 역사 이야기를 가감없이 담은 대본이 있습니다. 훌륭한 배우들이 연기하는 역사적 사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조재현)

"'정도전'은 남자들의 우정을 아주 농도 짙게 다루고 있습니다. 그걸 보여주는 과정이 아주 흥미로워요. 신뢰, 배신, 갈등 등이 적절하게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남성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큰 매력이죠." (임호)

"굵직한 선을 지닌 선배님들이 대거 출연하잖아요. 라인업만 봐도 믿고 보실 수 있을겁니다. 요새는 퓨전 사극이 대세인데, '정도전'은 정통사극이에요.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풀기 때문에, 교육용으로도 좋아요.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안재모)

지금 '정도전'은 2/3지점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또 시작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사건들이 남아 있습니다. 우선 정몽주의 선죽교 피살 사건이 있고요. 이성계의 조선 개국도 머지 않았습니다.

이 모든 자신감은 정현민 작가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잠시 김형일 CP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이대로만 나온다면 아무런 걱정이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정현민 작가는 정치 관련 대사를 풀어내는 데 탁월합니다.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10년 이상 활동한 경험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러고 보니, 여기 '정도전'의 매력이 하나 더 추가됩니다.

이성계와 정몽주, 정도전은 모두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했습니다. 그들의 다툼은, 단순한 자리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권세가 아닌 백성을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전제개혁만해도 그렇습니다. 당시 고려의 땅은 힘있는 자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모두들 전제개혁을 찬성했습니다. 다만, 방법적인 문제에서 이견이 갈렸습니다.

정도전은 '계민수전', 정몽주는 '과전법'을 주장했습니다.

'계민수전'은 토지를 백성의 식구 수대로 다시 재분배하자는 토지사상입니다. 권문세족의 땅을 몰수해 굶주린 백성에게 되돌려 주자는 정책입니다. 파격적인, 아니 이상적인 개혁안이죠.

'과전법'은 국가가 땅을 관리합니다. 단, 관리에겐 수조권(조세를 걷을 수 있는 권리)을, 백성에겐 경작권을 주자는 것이죠. 국가는 수확물에 대한 세금을 10%만 받고요.

이것이 바로, '정도전'에 열광하는 진짜 이유 아닐까요. 연기의 신들이 펼치는 살아있는 역사, 그리고 그 역사적 사실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세지….

지금, 우리 정치는 어떤 모습인가요?

☞ 보너스가 없으면, '디패Go'가 아닙니다.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연기신들의 귀요미 컷입니다.

"전인화 거울 아님메~"

"칼방원의 묵직하트"

"정도전은, 사랑입니다"

<서보현·김미겸·김혜원기자, 사진=서이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