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나는 80세, 걷기 힘든 60세 노년의 건강 좌우하는 '근감소증'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8.11.19. 03:01
방치하면 근육 기능 80%까지 잃어.. 일반 환자보다 사망률도 2배 높아
치료할 약물 없어 근력 운동 중요.. 국내선 아직도 근감소증 인식 부족
美-日은 질병으로 분류 국가서 관리
2016년 11월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세계 최초로 근감소증에 대해 질병코드를 부여했다. 질병코드는 국가 의료 시스템에서 질병을 분류할 때 쓰는 코드다. 이 코드가 있어야 의료진이 해당 질병에 대한 진단과 치료, 처방 같은 의료 행위를 합법적으로 할 수 있다. ‘M62.84’로 명명된 미국의 근감소증 질병코드는 세계보건기구(WHO)가 발간하는 표준 진단지표인 국제질병분류(ICD)의 제10차 임상용 개정판 ‘ICD-10-CM’에도 공식 등록됐다. 올해 4월에는 일본도 근감소증에 질병코드를 부여했다.
박형수 매일사코페니아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어떤 사람은 70세에 이미 거동이 어려워지고 어떤 사람은 100세에도 일상생활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이유를 근감소증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25세 이후부터 근육이 자연 손실되기 시작해 40세 이후에는 그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데, 영양 상태와 근력운동 여부에 따라 감소 폭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진단 기준은 보행 속도와 악력, 골격근의 질량이다. 아시아사코페니아워킹그룹(AWGS)에 따르면, 아시아인의 경우 보행 속도가 초당 0.8m 이하로 떨어지거나 악력이 남자 26㎏, 여자 18㎏ 이하일 때, 골격근의 양이 남자 ㎡당 7㎏ 이하, 여자 ㎡당 5.7㎏ 이하일 때 근감소증으로 본다.
문제는 근감소증을 계속 방치할 경우 근육량이 최대 60%까지 줄고, 근육의 기능도 80%까지 잃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독립적인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골절과 낙상, 우울증, 비만, 제2 당뇨병, 장애, 나아가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장일영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전임의는 “같은 암환자라도 근감소증을 앓는 환자가 일반 환자보다 사망률이 2배 이상으로 높다”며 “특별한 질병이 없어도 사망률에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다수 보고됐다. 둥비룽 중국 쓰촨대 웨스트차이나병원 교수팀은 2009년 1월“지난해 2월 발표된 근감소증 임상연구논문 1703건을 메타 분석한 결과 근감소증이 사고, 암, 수술 등 모든 원인에 의한 사망률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난해 9월 국제 학술지 ‘마투리타스(Maturitas)’에 발표했다.
아직까지 근감소증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은 없다. 근육이 분해되는 것을 막거나 근육이 잘 생성되도록 도와주는 약물만으로는 근감소증의 진행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력운동을 병행하면 약간의 영양 개선으로도 근감소증을 예방하고 개선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운동을 어느 강도로 얼마나 해야 되는지에 대해선 아직까지 표준화된 답이 없다. 현재 유럽, 아시아 등 7개 워킹그룹이 인구집단 특성에 맞는 근감소증 진단 기준과 예방·치료를 위한 운동법을 개발 중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근감소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실정이다. 지난해 세계 최단 기간인 17년 만에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은 앞으로 근감소증 환자가 쏟아져 나오리란 우려가 있다. 장 전임의는 “국내에선 근감소증에 대한 질병코드가 없기 때문에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무한 상황이다. 환자가 근감소증을 호소하더라도 처방 근거가 없어 속수무책”이라며 “국민들의 기대수명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수명이다. 초고령사회를 앞둔 지금부터 당장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한국을 찾은 쿠르트 뷔트리히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교수(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도 “골다공증이나 알츠하이머병도 노화 현상으로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그동안 간과됐던 근감소증에 대한 연구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송경은 동아사이언스 기자 kyunge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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