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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정보/전라도지역

‘신기방기’ 맹종죽림·두암초당, ‘고색창연’ 고인돌·읍성…고창 속살 탐험[투어테인먼트]

지송나무 2024. 2. 1. 20:19

‘신기방기’ 맹종죽림·두암초당, ‘고색창연’ 고인돌·읍성…고창 속살 탐험[투어테인먼트]

강석봉 기자입력 2022. 12. 22. 06:10수정 2022. 12. 24. 15:10
 
고창읍성 맹종죽림의 얽힌 소나무와 대나무. 사진제공|대한민국 구석구석.


고색창연이다. 고창 읍내에 떡하니 버티고 서있는 고창읍성의 위풍당당함이 그렇고, 고창 외곽을 에둘러 싸고 있는 고인돌군의 근엄함이 그렇다. 송창식이 그리도 외친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란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절에 가신 분들은 1500년 전에도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기도 한다. 게다가 세월을 이기며 벼랑에 매달린 두암초당의 끈기와, 세월을 버티며 시간을 갈아만든 식초의 신산함 또한 고창의 고색창연에 숟가락을 얹을 수도 있겠다.

고창읍성. 사진제공|고창군청


고인돌


고인돌 군락. 사진|강석봉 기자


고창 고인돌은 군락이다. 다양한 양식으로 쌓은 고인돌이 부지기수다. 이 군락은 ‘세계에서 밀집도가 가장 높은 고인돌 군집’이다. 야산 기슭을 따라 대략 1.8㎞에 이르는 곳에 펼쳐져 있다.

고창읍에서 4㎞쯤 떨어진 도산리 지동마을에 북방식(납작한 돌을 양쪽에 세우고 그 위에 복석을 덮은 구조) 고인돌 1기가 있고, 인근 2~3㎞에 고인돌군이 발에 챌 정도로 많다. 고인돌에 대해 그간 가졌던 고정관념에 묘비석을 세워야 할 판이다. 길이 5m, 폭 4.5m, 높이 4m의 150t 추정 고인돌을 비롯해, 447기의 고인돌군이 각각 고유번호를 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이곳은 4개의 트레킹 코스도 마련돼 고즈넉한 여행에 방점을 찍을 수 있다. 곳곳에 감나무가 있어, 까치밥으로 배 채우려는 새들의 비상과 합창도 가던 발길을 잡는다.

고인돌 군락. 사진|강석봉 기자


이 고인돌군으로 미뤄보자면, 고창은 청동기시대부터 핫플레이스였겠다. 이곳은 지난 2000년 11월, 강화·화순의 고인돌군과 함께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

고창고인돌박물관도 세워져 청동기시대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 곳곳의 고인돌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시관 외부의 야외공간은 고창 청동기인의 생활상을 체험해 볼 수 있는 테마공간인 죽림선사마을도 있다.

고창읍성


고창읍성. 사진제공|고창군청


고창읍성은 현실적이다. 읍성이자 산성이요, 옹성이다. 지금 전쟁이 나도 제 몫을 해줄 듯하다. 이 옹성(성문 밖에 원형으로 만든 작은 성)은 공격하는 적들을 가두리 양식장으로 끌어들여 몰살할 형세로 지어졌다.

고창읍성은 1453년(조선 단종 원년) 외침을 막기 위해 백성들이 자연석을 쌓아 만든 성곽이다. 각각의 지점에 책임자가 명기돼 있어 책임감수로 지었으니, 투박하지만 든든하다. 고창의 옛 이름 ‘모량부리’를 따라 모양성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성 둘레 1684m에 높이 4~6m로, 동·서·북문과 옹성, 치성(성벽 바깥에 덧붙여 쌓은 벽), 해자(성벽을 따라 판 방어용 연못) 등 방어 시설을 두루 갖췄다.

이런 고창읍성의 자신감은 기복이 됐고, 오늘날엔 스토리텔링으로 거듭났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고, 세 바퀴 돌면 극락왕생을 한단다.

성의 정문은 북문인 공북루다. 공북루는 우리 성곽 다른 곳에도 흔히 쓰인 현판이다. 별이 북극성을 향하듯 백성이 임금을 향한다는 뜻이다. 앞면은 주춧돌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뒷면은 화강암 기둥에 다시 나무 기둥을 세운 2층 누각이다. 기둥의 길이가 제각각인데, 이 역시 비바람에 나무가 썩는 것을 방비하려는 선조의 지혜가 엿보인다.

성안에 옥사와 동헌, 객사 등 관아 건물이 22동 있다. 딱 봐도 사극 촬영지로 제격이다. 드라마·영화의 로케이션 디렉터의 수첩에 0순위로 고창읍성이 적혀있는지, ‘사도’ ‘화정’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이 됐다.

고창읍성 안에 있는 맹종죽림. 사진|고창군청


성안을 산책하면 ‘세상에 이런 일이’를 눈으로 실감할 수 있다. 그중 맹종죽림에서 소나무와 대나무가 서로 똬리를 튼 모습을 목도하면 경외감마저 든다. 이외에도 그 기세가 방장해 ‘용송’이라 불리는 소나무가 성을 굽어보고 있다.

고창읍성 맹종죽림의 얽힌 소나무와 대나무. 사진제공|대한민국 구석구석.


선운사


선운사,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선운사는 약 1500년 된 고찰이다. 세월을 이고진 선운사의 불사가 그동안 힘겨웠기 때문인지, 대웅보전은 대대적으로 수리 중이다. 단청은 바랬고 건물은 헐거워졌다. 이 과정을 거치면 또 다른 천년이 선운사 앞에 펼쳐질 터.

공사 중인 선운사 대웅보전. 사진|강석봉 기자


백제 위덕왕 때, 검단선사가 세운 선운사는 금산사와 더불어 전북 내 조계종의 2대 본사다. 선운사를 품고 있는 선운산은 일명 도솔산으로도 불린다. 이 도솔산은 숲이 울창하고 기암괴석이 많으며, 계곡을 따라 진흥굴,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과 같은 절경이 곳곳에 흩어져 있다. 계곡에는 선운사관광지 주차장 앞에 천연기념물 송악이 있고, 선운사에서 도솔암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진흥굴 옆에 천연기념물 장사송이 자리하고 있다.

건축 폐자재로 지은 선운사 만세루 내부. 어느 하나 온전한 목재가 없다. 이리 뒤틀리고 저리 휘어진 자재가 서로 얽히며 든든하게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사진|강석봉 기자


그러나 선운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곳은 만세루다. 선운사 불사 때 버려진 폐목재로 지어진 만세루의 기둥은 휘어지고 쪼개지고 갈라졌지만, 결국 튼튼한 모습으로 대웅보전을 우러르는 곳에 자리했다. 사람이나 목재나 그 쓰임은 버려지기보다 활용돼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한다.

선운사 풍경. 사진제공|한국관광공사


선운사의 아름다운 겨울 풍경은 가수 송창식의 꼬드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마음을 뺏길 만하다. 선운사 대웅전 뒤에는 수령 약 500년 된 동백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돼 있다.

두암초당


고창 병바위. 사진|강석봉 기자


하늘을 향해 불쑥 솟아오른 고창 병바위는 1억5000만 년 전 백악기에 만들어졌다. 세월은 전설이 돼 신선이 술 취한 김에 술병을 거꾸로 박았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병바위 인근 전좌바위(존좌바위) 절벽에 새집처럼 들어선 두암초당에 눈길이 간다. 더불어 소반바위 등 바위산이 이어지는데, 주진천(인천강) 옆으로 산책로를 걷는 것도 자연의 풍미를 느끼기에 좋다. 주진천은 고창 특산물 풍천장어가 노니는 곳이다.

전좌바위(존좌바위)에 있는 두암초당. 사진|강석봉 기자


이중 압권은 두암초당이다. 고려 말 달성 서씨가 반암마을로 이주해 살면서 두암초당을 지었고 1954년에 중수했다. 방 한 칸, 마루 두 칸의 협소한 정자인데 여기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장엄하다. 영모마을과 마평들이 한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온다. 김소희 명창이 득음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전좌바위(존좌바위) 벼랑의 두암초당. 사진제공|고창군청


판소리는 고창에서 그 울림을 더한다. 고창읍성 매표소 바로 앞에 조선 시대 판소리를 집대성한 신재효의 고택(국가민속문화재)이 있다. 부유한 중인 출신으로 고창 관아 이방을 지낸 신재효는 소리꾼을 동원해 관청 행사를 치르면서 판소리를 체계화해, 구전되던 사설을 여섯 마당으로 정리했다. 고택 옆에 고창판소리박물관도 있다.

발사믹 식초


고창 자신의 자택에 있는 식초박물관에서 발사믹 식초에 대해 설명하는 정일윤 한국발사믹식초협회 회장. 사진|강석봉 기자


정일윤 한국발사믹식초협회 회장의 집에는 곰삭은 식초의 향기가 가득하다.

식초는 삭아서 제 살 내주고, 시간과 밀당하며 진기를 녹여 체액을 채운다. 항아리 하나에 복분자만 1100만 원어치를 들이부어 삭히고 녹여낸다. 현미는 160만 원어치가 들어간다. 사계절이 진득하게 흐르고 정성을 애잔하게 채운 후, 다시 천사에게 눈물을 내어주게 되면 진액만 남는다. 그렇게 발사믹 식초는 만들어진다.

고창에만 18개 식초 관련 업체가 있고, 전국적으로 40여 개의 발사믹 식초업체가 클러스터를 이뤄 한국발사믹식초협회가 꾸려졌다. 이를 이끌고 있는 사람이 정일윤 회장이다. 고창은 복분자를 토대로 한 발효에 집중하며 복분자 발사믹 식초의 메카로 거듭나고 있다.

정일윤 회장은 “복분자 등 식문화 인지도가 높은 고창에, 발효 문화가 더해지면서 해외에서 K푸드의 핵심 지역으로 유명세를 더하고 있다”며 “협회 회원사나 지역과 군, 관련 기관이 합심해 불씨를 살려야 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이곳엔 식초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도 꾸려져 있다.

 
고창 식초박물관 내부. 사진|강석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