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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탑랭킹(Top Ranking)/놀라운 탑랭킹

빌보드를 강타했던 역대 외국어 히트곡 Best 10 /10. PSY '강남스타일'

지송나무 2015. 6. 7. 21:15

스페셜 기획연재 

 
빌보드를 강타했던 역대 외국어 히트곡 Best 10

지난 20년 전만 해도 한국의 라디오 FM 방송에서는 주말만 되면 빌보드 차트의 최신 순위를 소개하는 방송이 팝 프로그램을 통해 진행되곤 했다(그리고 지금도 그 전통은 MBC FM ‘배철수의 음악 캠프’의 ‘American Top 20’ 시간을 통해 이어지고 있긴 하다). 그만큼 그 시절에는 한국인들에게 ‘대중음악을 즐긴다’는 것에서 영-미 팝 음악의 비중이 절대적이었다는 이야기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사실 1980년대까지는 해외 음악을 얻는 유일한 정보의 원천은 미국과 일본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우리는 ‘아주 가~끔은’ 세계 만국 공용어라 불리는, 실제로 수많은 국가들(영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국가는 세계에서 총 88개국이며, 제 2언어로 사용하는 국가도 꽤 많다)에서 사용되는 영어가 아닌, 미국인의 입장에서 ‘외국어’로 발표된 곡이 당당히 빌보드 Hot 100의 정상을 거머쥐던지, 아니면 상위권에 오래 인기를 얻어 그 해의 미국의 대중 인기곡의 대표가 되는 사례들을 목격해왔다. 이 리스트는 빌보드 Hot 100이 공식적으로 출범한 1957년 이후를 기준으로 Top 5 범위에 올랐던 곡들 가운데 정말로 미국인들에게도 화제를 모으고 지금까지 애청되는 노래 10곡을 정리한 것이다. 영어와 외국어가 섞인 경우에는 후렴이 확실히 외국어로 반복되거나, 최소한 가사의 절반이 외국어인 경우로 한정했다(불행히도 4번 곡은 다음 뮤직 데이터베이스에 커버 음원 조차 없어 소개를 망설였지만 팝 역사에서 꽤 중요한 곡이라 이 글에서 다루기로 했다).

1. Domenico Modugno 'Nel Blu Dipinto Di Blu' / 1958년 8월 최고 순위 1위(5주)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파랗게 칠한 듯한 푸른 바다에서’ 정도가 될 이 노래는 일반인들에게 원곡의 제목은 생소할 지라도 후렴구에 나오는 ‘Volare’라는 가사만큼은 국내 올드 팝 팬들도 기억할 만큼 유명하다. 이탈리아의 싱어 송라이터이자 배우로, 훗날에는 국회의원까지 지낸 이 가수는 이 곡으로 당시 상레모 가요제와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를 휩쓸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 여세를 몰아 이 곡은 미국에서도 발매되었고, 당당히 빌보드 Hot 100에서 5주간 정상을 지켰다. 이후 미국 내에서는 바비 리델(Bobby Rydell)의 커버 버전이 꽤 인기를 얻었고, 국내에서는 1989년 프랑스의 플라맹고/라틴 팝 그룹 집시 킹즈(Gipsy Kings)의 화려한 커버 버전이 익숙하다. 이처럼 빌보드 차트를 처음 ‘점령’했던 해외 히트곡은 놀랍게도 ‘이탈리아어’였다.

 
2. Joe Dowell | Elvis Presley 'Wooden Heart' / 1961년 8월 최고순위 1위(1주)

두 번째로 미국 차트의 정상에 진출했던 언어는 ‘독일어’였다. 사실 이 곡은 원래 독일의 민요 ‘Muss i denn‘(그 때 난 그래야만 했어)였고, 이 곡을 실제로 1950년대 말 독일로 의무 복무를 하며 잠시 대중과 떨어져 지냈던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가 이 곡을 자신이 출연한 영화 [G.I. Blues]의 OST에서 노래한 것이 첫 번째 커버 버전이었다(엘비스는 이 곡을 절반은 독일어, 절반은 영어로 소화했다). 그러나 엘비스는 이 곡을 미국 시장에서는 싱글로 내지 않았고, 영국에서는 발매하여 그 해에 영국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대신에 미국 시장에서는 극장 쇼 무대 싱어 출신이었던 조 도웰이 커버한 버전이 정상을 차지했다. 이 곡의 히트 이후 팝 음악계에서는 해외 히트곡이나 민요 등을 커버할 때 후렴구 정도는 그대로 두는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3. Kyu Sakamoto 'Sukiyaki' /원제 '上を向いて歩こう'(위를 보고 걷네) / 1963년 6월 최고순위 1위(3주)

세 번째로 미국 차트의 정상에 진출한 언어는 ‘일본어’였다. 이는 사실 일본조차도, 미국조차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일본 내에서는 원래 1961년에 발표되어 오리콘 차트 정상까지 밟았던 이 곡은 다음 해 영국의 한 레코드 회사 사장이 이 곡을 자국에 발매하면서 영국에서 먼저 알려졌다. 그리고 미국의 캐피톨(Capitol) 레이블도 이 곡을 미국 시장에 발매하면서 제목을 그대로 번역하기보다는 당시 미국인들에게 익숙한 일본 요리 ‘스키야키’를 타이틀로 붙여 발매했다고 한다. 이 곡이 빌보드 정상에 오른 덕분에 사카모토 큐는 미국에도 건너가 ‘에드 설리번 쇼’에도 출연하는 유명세를 누렸고 일본 대중음악의 전설적 존재로 지금도 기억되고 있다.

 

4. The Singing Nun 'Dominique' / 1963년 12월 최고순위 1위(4주)

원래 프랑스어로 된 민요로서,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여 마치 동요처럼 불려지는 ‘도미니크’를 노래한 싱잉 넌(그녀의 본명은 제닌 데커스(Jeanine Deckers)로, ‘Sœur Sourire(미소 수녀님)’이라는 호칭으로 수도원에서는 불렸다)은 원래 벨기에 도미니칸 수도회에 서원한 수녀로서 수도원 안에서 환자들과 동료들을 위해 노래를 작곡하고 들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수도원 사람들은 그녀의 노래에 감탄하여 음반을 취입하면 수도원의 운영을 위해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 이 음반의 취입을 허가했지만, 이 곡이 예상을 뛰어넘어 세계적 히트곡이 되면서 그녀의 인생 또한 변해버렸다. 결국 가수로서는 ‘원 히트 원더’로 남은 그녀는 1963년 루바이언 대학에 신학 강사로 출강했지만, 그 곳에서 만난 옛 친구와의 ‘깊은 관계’를 훗날 밝힘으로 인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수도원을 나와서는 사회 운동, 교회 개혁 운동 등에서 활동했지만, 1985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 Nena '99 Luftballons' / 1984년 3월 최고 순위 2위

이후 20년 동안 팝 차트에는 계속 외국어로 된 곡들이 등장은 했으나, 오히려 해외 국가들이 자국 가수들의 빌보드 진출을 위해 일부러 영어로 노래를 취입하는 곡들이 다수가 되어 실제 큰 히트곡은 거의 없었다. 그러다 한창 냉전 시대의 말기이자, 동-서독의 해빙이 서서히 시작되던 1984년, ‘빨간 풍선 99개가 베를린 장벽을 넘어간 것을 오판해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나?’라는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한 독일 여성 싱어 송라이터와 그녀의 밴드의 곡이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흥미로웠던 건 그녀는 미국 시장 진출을 꿈꾸며 이 노래의 영어 버전인 ’99 Red Balloons’를 동시에 녹음했으나, 정작 히트는 독일어 오리지널 버전으로 거두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밴 헤일런(Van Halen)의 ‘Jump’의 무서운 인기 기세가 아니었다면 1위를 했을 지도 모르겠다. 노래 자체는 가사에 비해 어둡지 않은 가볍고 경쾌한 뉴 웨이브 록 트랙이었다.

 

이미지정보
6. Falco 'Rock Me Amadeus' / 1986년 3월 최고 순위 1위(3주)

빌보드에서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서 대 인기곡이 되기 위해서는 물론 노래 자체도 좋아야 하지만 인기를 얻을 외적 ‘기회’ 역시 근방에 있어야 한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신스 팝/록 싱어 팔코는 바로 그런 면에서 제대로 바람을 잘 탔던 아티스트다. 물론 그는 그 이전에도 ‘Der Kommissar‘(미국에서는 영국 밴드 애프터 더 파이어(After The Fire)의 커버가 1위에 올랐다)라는 곡을 소폭 히트시킨 바 있으나, 영화 [아마데우스]가 아카데미상과 함께 화제를 모은 1986년 초, 영화에서 영감을 얻어 발표한 이 싱글이 영화의 이미지와 맞물려 세계적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일종의 ‘독일어 랩’을 들려주는 그의 노래는 그가 서구 힙합의 특성을 빨리 받아들이려 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고의 영예를 얻은 지 2년 만인 1988년에 교통사고로 사망,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 참고로 이 곡이 수록된 앨범 [Falco 3](1986)에 담겼던 ‘Jeanny’는 한국에서 이 곡 보다 더 큰 인기를 얻었다.

 

7. Los Lobos 'La Bamba' / 1987년 8월 최고 순위 1위(3주)

스페인어는 남미 국가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언어이며, 미국에 이민을 온 수많은 히스패닉 들로 인해 항상 미국 차트를 점령하기에 수월할 수도 있었으나 쉽게 차트 정상을 찍지는 못했다. 그 가운데 현재까지도 영어 버전이 없는 곡으로 유일하게 정상을 차지한 트랙이 바로 이것이다. 전통 멕시코 민요를 로커빌리 리듬을 가미한 록 사운드로 커버, 1958년 발표(당시 차트 최고 순위 22위)했던 미국 캘리포니아 태생의 싱어 송라이터 겸 기타리스트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의 일생을 다룬 영화 [라 밤바]의 OST에 수록된 로스 로보스 버전이다. 리치 발렌스가 거의 선구적 존재로 인식되는 소위 ‘치카노 록’(멕시칸 전통음악과 라틴, 로큰롤이 결합한 사운드)’의 충실한 후예로 1970년대부터 활동했던 이들은 이 커버를 통해 역대 최고의 대중적 인기의 순간을 맞이했었다.

 

8. Enigma 'Sadness (Part I)' / 1991년 4월 최고 순위 5위

이 노래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 국내의 많은 음악 팬들도 신선함과 동시에 일종의 음악적 충격에 빠졌던 분위기가 형성되었음이 기억난다. 하우스 뮤직 같은 부드러운 댄스 리듬 위에 그레고리안 성가에서나 느낄 분위기의 편곡, 그리고 에로틱한 분위기의 내레이션까지…… 한국 팬들에겐 1980년대 히트곡 ‘Moonlight Flower’로 알려져 있는 독일 출신의 뮤지션 마이클 클레투(Michael Cletu)의 프로젝트 그룹이었던 이니그마는 그렇게 전세계적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런데 당시 아무도 고려하지 않았던 것은 이 곡 역시 미국인에게는 일종의 ‘외국어 가창곡’이었다는 점이다. 바로 곡의 거의 대부분이 음악적 성격상 현재로서는 학문 연구나 가톨릭 신학 공부와 미사 등에서만 사용되는, 소위 ‘사어(死語)’인 라틴어로 불려졌다는 것. 이니그마의 히트 이후 그레고리안(Gregorian) 등 중세적 분위기와 라틴어 가사를 활용한 여러 ‘유사품’(?)들이 유럽 전역에서 유행하기도 했었다. 참고로 노래 속 여성 보컬은 마이클의 아내였고, 1980년대에는 솔로 댄스 팝 가수로도 활약했던 보컬리스트 산드라(Sandra)의 목소리였다.

 
 
9. Los Del Rio 'Macarena'(Bayside Boys Mix) / 1996년 8월 최고 순위 1위(14주)

1996년을 전 세계에 ‘마카레나’ 열풍을 몰고 왔던 스페인의 남성 듀오 로스 델 리오의 히트곡. 원래 이 듀오는 1962년 처음 결성되어 당시까지도 꾸준히 활동해오던 평범한 파티 뮤직 그룹으로, 공연 중심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의 음반을 자국에서 낸 바 있었다. 이 노래의 악상은 그들이 1992년 베네수엘라에 공연을 갔다가 그 곳에서 쿠바 댄스를 추는 한 여인을 보고 감탄하며 즉석에서 만들어냈고, 같은 해 처음에는 룸바 스타일의 버전으로 발표했다가 이후 푸에르토리코에서 큰 인기를 얻은 후 그 곳에서 마이애미/뉴욕 등을 오가는 크루즈에서 파티뮤직으로 활용되면서 미국 시장에까지 처음 전파되었다. 결국 이 곡을 프로듀싱 팀 베이사이드 보이즈가 영어 가사를 추가해 리믹스했고, 여기에 따라하기 쉬운 ‘마카레나 댄스’가 더해지면서 이 듀오의 ‘원 히트 원더’ 싱글은 오랜만에 스페인어 곡으로 미국 차트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만들어냈다.

 

10. PSY '강남스타일' / 2012년 10월 최고 순위 2위

아무리 전 세계에서 ‘K-Pop’을 지지하는 음악 팬들이 다양하게 생겨났다고 하더라도, 항상 ‘팝의 본고장’이라고 불리는 미국 시장에서 대형 히트곡을 배출하고 싶다는 것은 그간 하나의 ‘소망’에 가까웠다. 실제로 미국인들의 귀에 더 쏙쏙 들어가라고 영어 버전으로 발표했던 그간의 한국 아티스트들의 미국 시장 발표 싱글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거의 없었다(보아의 앨범 차트 200 진출과 원더걸스의 ‘Nobody’의 Hot 100 76위가 2011년까지의 역대 최고 성적이었다). 그러나 싸이가 ‘강남스타일’로 거둔 세계적 인기는 애초에 한국에서 기획된 아이디어로서의 ‘해외 진출’은 아니었다. 그저 그는 신곡을 발표하고 안무로 ‘말춤’을 선택했을 뿐이고, 이 유튜브 동영상이 세계인들에게 자발적으로 패러디가 되면서 인기를 얻은 것이다. 거기에 저스틴 비버와 칼리 레이 젭슨 등의 히트를 통해 떠오르는 프로모터가 된 스쿠터 브라운(Scooter Brown)이 그의 싱글의 인기 가능성을 보고 손을 내민 것은 이 곡의 인기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결국 정식으로 아이튠즈에 음원이 유통되자마자 이 곡은 37개국 차트 정상을 차지했고, 비록 마룬5에게 고배를 마셨다 해도 10주간 2위라는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남을 기록을 달성했다. 이 인기에 대한 평가에 대해 수많은 설왕설래가 지금까지 이어졌지만, 적어도 그는 미국 빌보드 차트의 역사 데이터 베이스에서 ‘Hot 100 차트에서 한국어로 불려진 외국어 Top 10 히트곡을 두 곡(이 곡과 ‘Gentleman’)이나 남긴 최초의 한국인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팝 역사에 기억될 것은 분명하다.

<daum 뮤직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