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4.07.21 08:10
<프롤로그> 왜 위대한 만남인가?(下)
1917년에 태어나 1979년에 생을 마친 박정희, 1927년에 태어나 2011년에 생을 마친 박태준. 십 년 차이로 이 험난한 땅에 태어나 공동의 운명을 짊어지고 서로의 고투를 감당한 뒤 32년 격차를 두고 각자 이 세상을 하직했으나, 늦게 떠난 이가 앞서 떠난 이와 맺었던 시대적 대의를 생의 최후 순간까지 지켜냄으로써 ‘영원한 동지’가 된 박정희와 박태준.
두 인물의 만남이 ‘위대한 만남’으로 거듭난 근거를 경제학적 계량화로도 증명할 수 있다. 1987년 9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가 수행한 『포항종합제철의 국민경제기여 및 기업문화 연구』라는 방대한 연구서(총 1,137쪽)에서 딱 하나만 살펴보아도 박정희가 왜 그토록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의지와 집념을 불태웠고 박태준이 왜 그토록 포항제철의 성공을 위해 강렬한 열정과 신념으로 목숨까지 걸었던가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국내 수요가들이 포항제철 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전량 수입했을 경우의 수입액에 대한 비용절감액을 보면 1979년에는 25.6%, 1982년에는 42.0%, 그리고 1985년에는 33.9%이어서 무려 예상 지출액의 3분의 1이나 됨을 알 수 있다. 즉 이 기간 중 국내 철강수요가들은 포항제철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약 3분의 1을 절약한 셈이 된다. 포항제철이 그 설립 이래 우리나라 철강 관련 산업의 생산원가를 크게 낮춤으로써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공헌한 바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포항제철이 이른바 ‘무(無)’라고 불린 악조건을 극복하며 ‘양질의 철강제품을 안정적으로 국제철강가격보다 30% 내지 40%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의 자동차산업도 조선산업도 전자산업도 오늘날의 영광을 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철(鐵)과 깊은 연관을 맺은 모든 한국의 산업들이 오늘날과 같은 두각을 나타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국제시세보다 저렴하게 철강을 공급한 포항제철이 바로 그만큼 적자를 냈다고 가정한다면, 그렇게 하고도 경이로운 흑자를 내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세계 최고라 불려온 포스코의 영광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1917년에 태어나 1979년에 생을 마친 박정희, 1927년에 태어나 2011년에 생을 마친 박태준. 십 년 차이로 이 험난한 땅에 태어나 공동의 운명을 짊어지고 서로의 고투를 감당한 뒤 32년 격차를 두고 각자 이 세상을 하직했으나, 늦게 떠난 이가 앞서 떠난 이와 맺었던 시대적 대의를 생의 최후 순간까지 지켜냄으로써 ‘영원한 동지’가 된 박정희와 박태준.
두 인물의 만남이 ‘위대한 만남’으로 거듭난 근거를 경제학적 계량화로도 증명할 수 있다. 1987년 9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가 수행한 『포항종합제철의 국민경제기여 및 기업문화 연구』라는 방대한 연구서(총 1,137쪽)에서 딱 하나만 살펴보아도 박정희가 왜 그토록 종합제철 건설에 대한 의지와 집념을 불태웠고 박태준이 왜 그토록 포항제철의 성공을 위해 강렬한 열정과 신념으로 목숨까지 걸었던가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국내 수요가들이 포항제철 제품을 구입하는 대신 전량 수입했을 경우의 수입액에 대한 비용절감액을 보면 1979년에는 25.6%, 1982년에는 42.0%, 그리고 1985년에는 33.9%이어서 무려 예상 지출액의 3분의 1이나 됨을 알 수 있다. 즉 이 기간 중 국내 철강수요가들은 포항제철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약 3분의 1을 절약한 셈이 된다. 포항제철이 그 설립 이래 우리나라 철강 관련 산업의 생산원가를 크게 낮춤으로써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공헌한 바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포항제철이 이른바 ‘무(無)’라고 불린 악조건을 극복하며 ‘양질의 철강제품을 안정적으로 국제철강가격보다 30% 내지 40%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한국의 자동차산업도 조선산업도 전자산업도 오늘날의 영광을 누리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철(鐵)과 깊은 연관을 맺은 모든 한국의 산업들이 오늘날과 같은 두각을 나타낼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국제시세보다 저렴하게 철강을 공급한 포항제철이 바로 그만큼 적자를 냈다고 가정한다면, 그렇게 하고도 경이로운 흑자를 내지 못했다고 가정한다면, 세계 최고라 불려온 포스코의 영광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