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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세계로 미래로/한국의 인물

손기정 선수와 아돌프 히틀러

지송나무 2019. 10. 20. 21:55

 

 

손기정 선수와 아돌프 히틀러

 

 결승점으로 들어오는 고 손기정 선수

 

 1위 - 손기정

2위 - 어니 하퍼 (Ernie Harper)

3위 - 남승룡

 

 

 

 

칼러 사진

 

 

 

  

 

 

조선 중앙 일보 일장기 삭제

  

 

  

 

동아일보 일장기 삭제

 

 

 

 

1위의 자리로 탈의실로 돌아 오면서도

많이 어두우신 얼굴이네요..

 

 

 

일명 손기정 투구라고 불리는 투구..

(위키피디아 인용)

--'손기정 투구'로 알려진 이 투구는 그리스 아테네 브라드니 신문사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당시 마라톤 우승자에게 씌워 주려 했으나 전달되지 못하고 50년간 베를린의 샤로텐부르크 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지난 1986년 손기정에게 전달되었다. 손기정은 이를 지난 1994년 국가에 기증했으며 정부는 손기정의 우승을 기념하기 위해 서양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904호로 지정했다.--

 

 

  이 투구는 1875년 독일의 고고학자가 제우스의 신전에서 발굴했는데 정식 명칭은

'코린트식 청동 투구' 라고 한답니다.. 대략 기원전 8~7세기 경에 사용되었다고 해요.

 

이 투구를 전해 받은 손기정 선수께선

"투구는 개인의 것이 아닌, 민족의 것이고 국민에게 긍지와 청소년에게는 꿈과 투지를 심어주기 위해 국가에 기증한다"

라는 말씀과 함께 1994년 국립 중앙 박물관에 기증되었어요.

 

 

 

 

손기정 선수께서 받아오신, 나치 독일의 퓨흐러인 히틀러가 선물로 준 '월계수' 인데요, 진짜 월계수가 아니고

북미가 원산지인 대왕참나무 라고 해요.

당시 월계관도 대왕참나무 잎으로 만들어졌다고 해요.

 

 

 

 

 

월계수라고 써있지만 사실은 대왕참나무에요.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후, 독일 군인하고 말을 나누는 손기정 선수

 

 

손기정 선수의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따로 자리를 마련했다는데

당시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삼태극을

일장기 대신 가운데에 걸어놓은게 인상적입니다.

 

(히틀러가 일본인을 싫어했다는 말이 있고 손기정 선수가 우승하는것을 보며 저렇게 뛰어난 민족이 왜 미개한 일본아래서 식민지로 살고 있는가? 저들도 우리 독일인들처럼 기회가 없어서 그 기량을 뿜지못하는 민족이 아닌가? 라고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어디 책에 쓰여있다는것같은데 확인해본적은 없습니다.)

 

 

 

사실상 베를린 올림픽의 목적은 독일인의 (=아리아 인의) 우수성을 입증하는것이었기에 히틀러는 독일인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선수가 누군지 매우 궁금해 했었다고 해요.

 

손기정 선수의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에는 히틀러를 만난 대목이 있는데요, 읽어보면:

 

'나치 독일의 총통 히틀러는 우승자들에게 격려의 악수를 해주었다. 나도 대면기회를 갖게되었다' 라고 써있고 또한 마라톤 직후 일본인 임원이 '독일 총통을 만나야 하는데 독일 말을 할 줄 아느냐?' 라고 물었을때 손기정 선수께선

'그 사람은 우리말을 할 줄 아느냐? 피차 남의 말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라고 대답하셨다고 해요.

 

자서전에는:

 

'히틀러는 덥석 나의 손을 쥐고 흔들면서 마라톤 우승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독일 국민들이 선해줘서 이겼다. 고맙다 라고 말했다'

 

또한 히틀러의 인상착의에 대해선

 

'160cm인 내 키에 비해 그의 손은 크고 억셌으며 체구는 크고 우람했다. 그리고 독일을 이끌어가는 통치자 답게 강인한 체취를 풍겼다.' 라고 서술되있어요.

 

 

또한 손기정 선수께선 76년도 동아일보에 "히틀러 인상기"라는 글을 썼는데 처음에는 긴장에서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고 해요. 그러나 곧이어 히틀러가 웃으면서 "당신은 위대한 쳥년입니다"라고 손기정을 치켜세운 뒤 악수를 청했고

손기정 선수는 상기된 상태로 독일 국민의 성원에 감사하다가 답변했다고 해요.

그러자 히틀러는 다시 웃으면서 조국으로 돌아가면 체육에 헌신하라고 말한 뒤, 손기정 선수의 등을 툭툭 두드려주고는 방에서 나갔는데 당시 너무 긴장해서 히틀러의 얼굴을 제대로 못보고 같이 사진을 찍지못한게 내심 아쉬웠다고 써있어요.

 

당시 손기정 선수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 준 사람이 아돌프 히틀러 라고 해요.

 

 

 

 

1988년 서울 올림픽 봉화 주자,

손기정 선수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황영조 선수가 자신의 금메달을 손기정 선수의 목에 걸어주었는데

이때 손기정 선수께서 누구보다 기뻐하시며 "오늘은 내 국적을 찾은 날이야"라는 가슴 찡한 말을 하셨어요.

 

 

 

어느 독일인의 글..
이 얘기는 어느 독일인이 자신의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인데, 일본인을 원숭이라고 표현했다는 문제로 일본 유학생 중 한 명이 일본의 어느 게시판에 올렸답니다. 그 후 그 독일인의 싸이트는 해킹당하고 작성자의 개인 정보가 유출당해 일본의 우익들로부터 테러에 가까운 협박을 받았었다네요. 그러자 한국인 유학생도 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결국 한국어로 그 싸이트의 문제가 된 글을 번역해서 올린 거라고 하네요.

 


이하 어느 독일인의 글입니다.

당신은 감동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가.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 먼저 지도를 펴기 바란다.
아마 당신이 알고 있을 중국과 일본 사이에 한반도가 있고 그곳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보일 것이다.

이야기는 이 조그만 나라의 어느 마라토너가 중심에 있다.
이 나라는 지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중국과 일본이라는 두 무력에 의존하는 나라 사이에서 놀랍게도 2000년간 한번도 자주성을 잃어본 적이 없는 기적에 가까운 나라이다. 그리고 이럴 경우 이 한국인들은 나라 대신에 "민족"이라는 표현을 쓰기를 좋아한다.

어느 여름날 우연히 본 한 장의 사진 때문에 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의 굉장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다. 1936년 히틀러 통치 시절, 베를린에서 올림픽이 열렸고 그 때 두 일본인이 1위와 3위를 차지하였다. 2위는 독일인(사실은 영국인)이었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간 이 두 일본인 승리자들이 표정... 이것은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불가사의한 사진...

무엇이 이 두 승리자들을 이런 슬픈 모습으로 시상대에 서게 했는가...

과거도, 그리고 현재도 가장 인간적인 유교라는 종교가 지배하는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은 이웃한 일본인(죽음을 찬미하고 성에 탐닉하는)에 대해 영리한 원숭이에 불과하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으며 불행히도 이 인간적인 품위를 중시하는 자부심 강한 민족이 이 원숭이들에게 "강간"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침략, 즉 식민지로 떨어지고 말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당시 대부분의 불행한 식민지의 청년들은 깊은 고뇌와 번민에 개인의 이상을 희생하고 말았고, "손" 과 "남" 이라고 하는 두 청년들 역시 예외일 수는 없었다. 이 두 청년들은 달림으로써 아마도 자신들의 울분을 표출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이 두 청년들은 많은 일본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달렸을 것이다. 달리는 내내 이 두 청년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승리했고 시상대에 오를 수 있었지만 그들의 가슴에는 조국 한국의 태극기(이 국기는 대부분의 나라의 그것이 혁명이라든가 투쟁이라든가 승리 또는 위대한 황제의 문양인데 비해 우주와 인간과 세상 모든 것의 질서와 조화를 의미한다) 대신 핏빛 동그라미의 일장기가 있었고, 스탠드에 역시 이 핏빛 일장기가 올라가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청년의 표정이란...
그들은 깊게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부끄럽고 슬픈 얼굴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 뉴스를 전한 일본 검열하의 한국 신문 EastAsia(동아일보를 지칭하는 듯)는 이 사진 속의 일장기를 지워버리고 만다.
이 유니크(unique)한 저항의 방법... 과연 높은 정신적인 종교 유교의 민족답지 않은가.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이 신문사를 폐간시키고 만다. 이 우습고도 단순하면서 무지하기까지 한 탄압의 방법이란...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침내 이 민족은 해방되고 강요당한 이데올로기에 의해 무서운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른 후, 한강의 기적(한국인들은 지구상에서 일본인들을 게을러 보이게 하는 유일한 민족이다)을 통해 스페인 보다도 포르투갈 보다도 더 강력한 경제적 부를 이루고 만다. 그리고는 1988년 전두환 장군(이 나라의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은 군부 쿠데타를 일으킨 박, 전, 노 라고 하는 세 명의 장군들이 남미나 여타 제3세계의 그것들과 달리 각자 부흥과 번영과 민주화라고 하는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는데 있다)에 의해 수도 서울에서 올림픽을 개최하는 데 이른다.

불과 50년... 태극기조차 가슴에 달 수 없었던 이 나라 아니 이 민족이 올림픽을 개최하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개막식, 성화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선 작고 여린 소녀 마라토너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은 사람은 그날 너무나도 슬프고 부끄러웠던 승리자, "손"(손기정)이었다. 노인이 되어버린 이 슬픈 마라토너는 성화를 손에 든 채 마치 세 살 먹은 어린애와 같이 훨훨 나는 것처럼 즐거워하지 않는가!!

어느 연출가가 지시하지도 않았지만 역사란 이처럼 멋지고도 통쾌한 장면을 보여줄 수 있나 보다. 이 때 한국인 모두가 이 노인에게, 아니 어쩌면 한국인 개인 개인이 서로에게 얘기할 수 없었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극적이게도 서울올림픽 도중에 일본 선수단은 슬픈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쓰러져 죽음을 기다리는 히로히토 일왕의 소식...

한국인들의 종교 유교는 인간, 심지어는 죽은 조상에게까지 예를 나타내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보이지 않는 신이 인류 역사상 (예수나 석가도 해내지 못한) 기적을 일으킨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이기를 바랬다.

이처럼 굉장한 이야기가 이대로 보존되기를 바랬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집념과 끈기, 그리고 폭력과 같은 단순함이 아닌) 놀라운 정신력으로 그들이 50년 전 잃어버렸던 금메달을 되찾고 만 것이다.

서울 올림픽이 끝나고 4년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에서 "황"이라고 하는 "손" 노인과 너무나 흡사한 외모의 젊은 마라토너가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과 독일의 선수들을 따돌리고, 마침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축제의 월계관을 따내고 만 것이다.

경기장에 태극기가 올라가자 이 "황"은 기쁨의 눈물과 함께 왼쪽 가슴에 달린 태극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는 스탠드로 달려가 비극의 마라토너 "손"에게 자신의 금메달을 선사하곤 깊은 예의로서 존경을 표한다...

"황"을 가슴에 포옹한 "손"은 말이 없다.
나는 이 이야기를 접하고는 인간에 대한 신뢰에 한없이 자랑스러움을 숨길 수 없었다.

인간이란, 이 한국인 아니 이 한국 민족처럼 폭력과 거짓과 다툼이 아니라 천천히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서 자신들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이 비극적인 눈물로 시작된 역사일지라도 환희와 고귀한 기쁨의 눈물로 마감할 수있는 것이다.

역사상 어느 민족도 보여주지 못했던 인간과 국가와 민족의 존엄을 이 한국인 아니 한국 민족이 보여주지 않는가.

도서관에 달려가라, 그리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대에 선 두 한국인의 사진을 찾아라...

당신은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될 것이다.

 

 

 

  

어디서 읽었는데 우리나라 교과서에선 당파싸움으로 조선은 항상 싸웠다 라고만 쓰여있지만 외국인들의 입장에서 볼때는 비록 당파싸움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조선이란 국가는 선비사회로써 법보다는 도덕으로 국가를 운영하려는 이상주의 국가였다 라고 말한게 기억이 나네요.. 어쩌면 보는 시선에 따라 우리가 생각치도 못한 견해가 나오기도 해요.

 

(여기서 노래를 꺼주시면되요~)

 

 

약간의 상식: 히틀러와 일본

 

2차 대전..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일본 이렇게 3 국가가 동맹을 맺게 되는데 이것을 추축국 (The Axis Power)이라고 해요.

(당연하지만 연합군 -Alied forces-은 영국, 프랑스, 구-소련 그리고 일본의 진주만 공격으로 열린 태평양 전쟁으로 인해 본격적으로 뛰어들은 미국 이렇게 4 개국이 연합군을 이끌었지요)

처음에는 혼자 모든일을 일으켰지만 아무래도 혼자 싸우는건 좀 그러니까 이탈리아와 일본을 자기네 편으로 만들었는데요, 이때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문화에 심취해있었고 심지어는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꿈은 무명의 화가로써 이탈리아의 거리를 걷는것이다." 라고 말했을 정도에요.

 

히틀러의 나치즘은 당시 현재의 일본 우익들이 생각하는것과 거의 비슷한데 자신들이 대표적인 아리아 인들이고 침몰한 아틀란티스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인 불가능한 고대의 선진 문명국)의 살아남은 후예라는 주장이었어요. (일본우익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자손이라고 생각하지요..) 실제로 히틀러는 독일인 잣대라는 법을 만들어서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순수 혈통 독일인은 피부가 하얗고 코는 크지 않으면서 오똑하며 눈은 파랗고 머리는 금발에 키가 훤칠하다, 즉 잘생겼다 라는거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히틀러 자신은 유태인 태생에 여기에 해당대는 것 하나 없었어요. 하지만 이 일로 인해 유대인들이 축출되었는데 바로 유대인들은 코가 크다 라는 기준을 적용해서였어요.

 

또한 그는 사회주의를 싫어해서 막시스트를 탄압했고 사회주의자들은 총살형에 처했어요.

게다가 독일인들은 모두 우수하다면서 독일인 중, 장애인들은 모조리 수용소에 가두거나 총살형을 내렸지요.

그들이 독일인임에도 불구하구요..

 

 

 

히틀러

 

File:Bundesarchiv Bild 183-S33882, Adolf Hitler retouched.jpg

 

본명은 Adolf Hitler로 1889년 4월 20일 오스트리아와 독일 국경지대에서 태어났고 당시의 독일인 바이마 리퍼블릭을 무너뜨리고 나치당을 이용해 나치 독일을 건국 하고 총통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에요. 냉정하게 보면 그는 매우 뛰어난 지도자였어요. 그의 연설은 사람들을 휘어잡았고 항상 자신의 비서가 써주는 연설을 읽으면서도 버벅댄 2차대전 당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물론 이사람도 악명높으면서도 대단한 지도자였지요)과 비교가 되었고 1차대전 이후 프랑스에 엄청난 양의 배상금을 물어주고 베르사유 조약으로 라인강 일대 (공장지역)를 잃고 사실상 무장해제 된데다 장작을 사는것보다 돈을 태우는것이 더 경제적일만큼 지독한 인플레이션이 나도는 독일을 우뚝 서게 만든것도 냉정하게 보면 그의 덕이에요. 하지만 그에비해 죄가 너무 커서 아돌프 히틀러는 전범이에요. 전쟁을 일으키고 수백만명의 유대인과 무고한 민간인들을 죽인 정정 당당한 댓가지요.

 

 그의 자서전 마인 캄프 ('나의 시련')에는 그가 본래는 화가가 되고싶었지만 '비엔나 예술 학교'에서 2번 떨어졌다고 하는데 당시 이유는 그가 그림에 소질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한 교수는 그가 건축학에 더 재능이 있다고 말해주었고 건축학쪽으로 나가라는 조언을 해주었지만 건축학은 고등학교를 나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기에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만 히틀러에겐 (돌아갈 마음도 없었구요) 포기해야 할 꿈이었어요. 세계 제 2차대전 발발 전에는 영국 대사관의 대사인 네빌 핸더슨과 면담을 가졌는데 네빌 핸더슨의 증언에 따르면 히틀러는, "나는 화가이지 정치인이 아니다. 폴란드와의 문제가 끝나면 나는 내 인생을 평범한 화가로 끝내고 싶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후에 히틀러가 베를린 밑 지하벙커에서 자살하기 전, 그의 심복에게 "내가 말한것은 모두 대의를 위한 거짓말이었다" 라고 말했다고 하는것을 보면 종잡기가 좀 힘든 대목이에요.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죽였고 (아버지가 유대인인데 그의 아버지는 그가 원하는 화가는 하지말라고 하며 변호사 쪽으로 나가라고 무조건 밀어서 아버지를 경멸했다고 해요) 2차대전을 일으켜서 후에

'레드 아미' (소련군)에 의해 궁지에 몰려 자신의 지하 벙커에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을 권총과 청산가리를 이용해서 죽이고 자신도 청산가리 복용 후, 권총으로 머리를 쏘는것으로 생을 마감했다고 알려져있어요.

그의 시체는 베를린에서 소각어진 체 발견된것으로 알려져있는데 이것을 발견한 군대가 처음으로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군이었고 그 이후의 행방은 현재엔 아돌프 히틀러로 추정되는 뼈 일부가 발견되었으나 아직 행방이 묘연하다고 해요.

 

그의 대한 음모론으로는 아직도 죽지 않고 남미 어딘가에 숨어있다거나, (히틀러의 주치의를 포함한 여러 증언에 의해) 그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는 말도 있어요.

 

(실제로 그의 주치의는 히틀러가 남성의 그것이 아닌 여성의 그것을 갖고 있었다고 증언했고 후에 전범 재판을 받은 그의 측근들도 독일 남성의 평균키보다는 훨씬 더 작았으며 항상 '남성다움을 유지한다' 라는 명목 하에 남성 호르몬을 복용했고 어깨가 남자처럼 떡 벌어진게 아닌 여자처럼 좁았으며 옷을 입을때 항상 가슴부분을 유의했다는 기록들이 전부 남아있어요. 하지만 이것만큼 그가 남자였다는 증거도 만만치 않아서 알기는 힘들어요. 어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그가 여자였다는 사실을 알 수있다고 주장하기도해요)

 

아돌프 히틀러의 그림들

 

 

 

 

 

 

 

 

 

 

아이러니하게도 무시받던 그의 작품들은 그가 죽고나서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화가로써의 평범한 삶을 원했지만 결국 수백만을 죽이고 전범의 길을 택한 한 남자.

한국인으로써 참가하고 싶었지만 일제로 인해 일본인으로 오늘날까지 등록된 비운의 한 남자.

 

이 둘의 만남은 나치 독일의 총통 및 전범과 비운의 마라토너를 뛰어 넘어서 서로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고 받은것만은 분명해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