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15. 05. 15

불로그에 올린 글이 부족하나마 세상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이시대의 스타/예능·기타(etc)

에필로그-영원한 오빠, 남진

지송나무 2015. 6. 17. 08:58

 에필로그-영원한 오빠, 남진

[취재수첩] 에필로그-영원한 오빠, 남진



JTBC 뉴스토요일에 방송된 '영원한 오빠, 남진' 인터뷰 리포트 잘 보셨나요. 방송에 앞서 가수 남진 씨 인터뷰 과정에 관한 프롤로그 취재수첩 기사를 올렸습니다. 이번에는 한정된 방송 리포트에 담아내지 못한 이야기를 에필로그 취재수첩 기사를 통해 전해드릴까 합니다.

#한 분야에서 50년

남진 씨를 만나기 전 약간의 위압감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본 그는 그런 권위의식은 전혀 없이 소탈하고, 친근한 사람이었습니다.

"남진 씨가 지금 입은 게 청바지야?"

인터뷰에 앞서 기자간담회 때, 테이블 옆자리에 앉아 있던 다른 언론사 기자가 물어왔습니다. 무대와 다소 거리가 있었던지라 같은 테이블에 앉은 기자들끼리 그것이 청바지인지, 면바지인지 잠시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자세히 보니 청바지였습니다.

1946년생으로 올해 한국 나이 예순아홉 살인 그가 빨간 재킷에 청바지 차림으로 나타난 겁니다. 인터뷰 때 물으니 평소에도 청바지를 자주 입는다고 하더군요.

움직임은 시원시원하고, 기자의 질문이 끝날 틈도 주지 않고 생각하는 바를 표현했습니다. 그야말로 거침없는 모습, 기자에겐 아버지 뻘임에도 '오빠'란 표현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영원한 오빠'라 불리는 건, 이런 외형적인 것이나 행동양식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걸 인터뷰가 끝날 무렵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대를 위해 절제

식성이 좋은 남진 씨, 과거 지금보다 살이 많이 쪘을 때도 있었습니다. 전남 목포 출신인 남진 씨 표현에 따르면 "고향이 아랫동네라 원체 먹는 걸 좋아하는데다 식탐도 있어 음식을 보면 참기 어렵다" 합니다. "뭘 그렇게 좋아하느냐"고 묻자 "딱 하나 빼곤 다 잘 먹는다"고 답하더군요. '딱 하나'는 바로 '멍멍이'였습니다.

하지만 음식을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바로 대중의 박수 소리를 듣는 일. 무대에서 팬들에게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음식 조절에 들어갔고, 그 결과 체중을 많이 뺄 수 있었다고 하네요.

"무대가 없었다면 아마 지금쯤 100킬로는 나가야 할 거에요."

지금은 몇 킬로냐고요, 그건 묻지 못했습니다.

그가 건강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한 번 콘서트를 하면 약 4시간 반 동안 70여 곡을 부른다고 하는데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란 별명답게 가만히 서서 노래하는 게 아니라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하니 건강은 선택 아닌 필수라고 합니다.


#오빠부대의 원조

1977년 사망한 전설의 팝가수 엘비스 프레슬리. 남진씨의 대표적인 별명 중 하나도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입니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떠오르게 하는, 곱상하면서도 귀공자 같은 외모, 화려한 무대 매너와 몸동작, 눈웃음, 거기다 프레슬리 스타일의 의상과 헤어스타일로 무대를 선보인 적도 있습니다.

실제 프레슬리를 가수로서 무척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1964년 데뷔한 남진씨는 프레슬리와 단둘이 만난 적은 없지만, 언젠가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공연을 본 적은 있다고 하더군요. 비록 프레슬리는 오래 전 고인이 됐지만, 만약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물었더니, "그의 음악성에 대해 깊이 알아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프레슬리는 과연 어떤 음악을 추구하는지, 또 세계적인 가수인 그의 인간적인 면모도 알고 싶다고 하더군요.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진지한 대답이라 의외였습니다. 더불어 이런 말도 전하고 싶다고 했죠.

[취재수첩] 에필로그-영원한 오빠, 남진


"내가 한국의, 우리나라의 엘비스로 불릴 정도로 우리 국민도 당신을 다 알고 나도 무척 좋아하는 가수다"라고.

"이런 말을 하면 얼마나 좋아할까요"라고 되묻더군요. 남진씨는 평소 자신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고맙게 느껴진다고 하는데요. 찾아가서 인사까지 할 정도라고 합니다. 프레슬리 역시 '한국의 프레슬리'인 자신에게 그렇게 느끼지 않겠냐는 거지요.

'오빠부대의 원조'도 남진씨 이름에 늘 붙어 다니는 수식어입니다. 1969년, 한창 인기 가수로 주가를 올리고 있던 남진씨는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파병됐습니다. 71년 귀국해 3개월 만에 리사이틀(콘서트) 무대를 열기까지 3년간의 공백이 있었던 거죠. 가수 인생 50년 중 가장 힘들었던 때가 이때였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빈자리를 차지한 새로운 스타들, 잊힘에 대한 두려움, 다시 사랑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귀국 직후 연 리사이틀 무대에 팬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몰려들어 우려를 말끔히 씻어냈고, 그 해부터 73년까지 3년간 MBC 가수왕을 내리 휩쓸었습니다. 그는 "71년 가수왕 시상식 때 '오빠' 하는 함성을 처음 들었다. 우리 가요계에 맨 처음 오빠부대가 생겨난 순간이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수로서 처음 리사이틀 무대를 열고, 자신으로 인해 오빠부대가 처음 생긴 것이 지금도 무척 자랑스럽다고 합니다.

#팬들은 이제 나의 가족

8일 열린 데뷔 50주년 기념 특별 기자간담회장에는 많은 취재진과 함께 '남진 사랑' 팬클럽 회원 30명도 현장을 찾아 남진씨를 응원했습니다. 50·60대가 대다수로 보였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팬이었고, 아마 무덤에까지 따라가서 좋아할 것"이라는 53세 남성을 포함해 모두 수십 년 된 팬이었죠. 남진씨는 이들이 이제는 팬이 아닌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인터넷 팬카페를 중심으로 팬클럽이 운영되다 보니, 팬들은 실명 대신 닉네임으로 주로 활동하는데요. 남진씨 또한 이들을 닉네임으로 기억한다고 해 어떤 닉네임이 기억나는지 물었습니다.

"바다, 꽃게, 미루, 복실이, 뚱뚱이, 이쁜이…."

중간중간 미간을 찡긋하며 한 명이라도 더 기억해내려던 남진씨, '그의 팬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남진과 함께라면 이 50대, 60대들은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할머니가 아닌 바다요, 미루요, 뚱뚱이인 겁니다.

#여전히 그는 황금기다

많은 이들은 그가 1960~70년대에 황금기를 누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앞으로의 목표를 묻자 "지금부터 더 열심히 노력해 가수로서 또 인생의 황금기를 만들도록 하겠다"고 하더군요. 20대 못지않은 열정과 에너지, 끊임없는 자기 관리·노력, 팬들을 아끼는 마음…. 내년이면 칠순인 남진씨가 '영원한 오빠'일 수 밖에 없는 이유였습니다.

데뷔 50주년이 그간의 성과를 축하하고, 가수 인생을 정리하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가수 인생 2막을 위한 새 출발선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 것도 그래서입니다.

누구에게든 지나간 인생 최고의 황금기라는 것 없는 것 같습니다. 남진씨의 말처럼 자신의 황금기는 앞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니까요. 칠순을 눈앞에 둔 나이라 할지라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