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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마음의 양식/소설 이야기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지송나무 2015. 6. 26. 15:59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누에에서 실을 뽑듯 마르지 않는 샘처럼 줄기차게 작품을 창출하는 작가 이문열. 그의 ‘젊은 날의 초상’이 고고성을 울린 지 26년이 된다. 20대에 이 책을 접한 이들은 중년을 지나 50줄에 접어들었다. 오늘날 이 작가에 대한 평가는 분분하다. 대학 졸업 후 박물관에 몸담은 내게 이 소설은 문헌 중심의 역사에서 미술사로 전공을 바꾸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감회가 남다르며 각별하다.

후에 장편으로 개작된 중편소설 ‘사람의 아들’을 통해 처음 저자를 만났으며, 두번째가 이 소설이다. 1970년대 초 신문에 연재된 최인호의 ‘바보들의 행진’과 달리 다소 묵직한 주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비틀거리는 청춘은 절망과 우울로 만든 조각보. 재수를 거친 대학생 주인공은 불안과 갈등으로 종교와 운동권 그리고 철학 동아리 모두에서 안식을 얻지 못한다. 이는 동시대를 산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다. ‘바보들의 행진’에선 고뇌에 짓눌려 자살로 돌파구를 찾기도 하나 이와 달리 절망을 훌훌 털고 일어난다. 그 무엇에 의해서?

소설을 읽는 재미는 간접 체험이 주는 대리 만족이 우선이다. 이에 대개 줄거리를 좇기에 바쁘나 더 나아가 주제를 헤아려볼 일이다. 긴 논문도 몇 줄로 요약되듯 저자의 메시지를 찾는 적극적 행위도 필요하다. 배회와 방황은 설경(雪景)이 준 눈부신 자연의 아름다움, 그 황홀에 매료돼 마침내 끝난다. 그건 돈오(頓悟)와 같은 것이어서 지적 논리나 배움의 힘은 아니다. 존재 자체와 자연을 비롯한 주변에의 외경(畏敬)은 삶에 강한 애착을 준다. 진리뿐만 아니라 아름다움도 인류를 구원한다. 이는 예술 존재의 당위성이기도 하다.

〈이원복 국립전주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