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관광지 - 광주 8경)
1.구 도청앞 광장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동구 광산동 13
구 도청 앞 5·18광장은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80년 민중항쟁 당시 시민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광주의 심장부를 가로지르는 충장로는 쇼핑과 패션의 중심지로 밤이 면 형형색색의 조명이 어우러진 거리로 항상 청춘 남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활기 넘치는 곳이다.
2.무등산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산 209-5
무등산은 남도인의 정신이 담긴 산으로 광주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봄철이면 만개하는 연분홍 철쭉과 진달래, 가을철의 단풍과 산등성이의 억새, 겨울산의 설화는 무등산의 운치를 더해준다.
3.사직공원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남구 사동 177
봄이면 공원입구에 벚꽃이 만발하여 터널을 이루고, 여름에는 아카시아 녹음, 가을의 단풍과 낙엽 등이 한껏 어우러져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꼬불꼬불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 산책하는 묘미도 괜찮은 곳이다. 사직공원에서 바라보는 무등산의 해돋이는 특히 장관이다.
4.월드컵경기장
소 재 지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423-1
환경친화적인 경기장으로 설계되어 국제축구연맹(FIFA)실사단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구장' 이라는 평가와 월드컵 4강 신화의 현장인 월드컵경기장은 이 지역 전통민속놀이 '고'를 형상화해 이색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밤에 바라보는 달맞이는 현대인의 가슴에 찡한 감동을 불러주기에 손색이 없다.
5. 월봉서원(빙월당)
종 목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9호 지 정 일 1979.08.03 소 재 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452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전기의 문신인 기대승(1527∼1572)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선생은 성리학의 대가로 새 학설을 제시하여 학계에 주목을 받았으며 특히 스승인 이황 선생과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8년 간의 서신왕래는 너무나 유명하다.
원래 이곳은 기대승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박상·박순·김장생·김집 등 조선의 명신들을 함께 배향하고 있는 ‘월봉서원’의 강당이었다.
월봉서원은 그가 죽은 뒤 그를 추모하기 위해 큰아들인 기효승이 선조 11년(1578) 세운 것으로 정조가 ‘빙월당’이라 이름을 지어 내렸다.
앞면 7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앞면과 오른쪽 반 칸에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1980년 새로 세운 사당과 그의 저서를 보관하고 있는 장판각, 내·외삼문이 높다란 대지 위에 서쪽을 바라보며 서 있다.
6.잣고개 야경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 산136
무등산장으로 가는 길에 꼴깍 고개를 넘어가는 잣고개에서 내려다본 광주의 야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잣고개를 에둘러 친 무진 고성의 성터는 장원봉을 중심으로 제4수원지 안쪽의 산능성을 따라 둘레 3,500m의 타원형으로 축조돼 있다.
7. 중외공원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164
각종 놀이시설과 함께 수려한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도시 근린공원으로 인기가 높은 중외공원은 시립미술관, 시립민속박물관과 비엔날레 전시관이 들어서 있으며, 놀이시설 등이 설치되어 있어 휴일이면 나들이 객들로 붐빈다.
특히 가을철 단풍 명소로도 유명하며, 광주의 관문에 설치된 무지개다리는 비엔날레 상징물로써 광주비엔날레 및 세계김치축제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8.포충사
종 목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7호 지 정 일 1974.05.22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947-1 시 대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활약한 고경명(1533∼1592)과 그의 장남 고종후(1554∼1593)·둘째 고인후(1561∼1592) 등 3부자와 유팽로(1554∼1592)·안영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고경명은 임진왜란 때 60세의 고령으로 의병 7천명을 이끌고 왜군과 맞서 싸우다가 금산전투(1592)에서 전사하였다. 그를 따라 의병에 참여하여 왜군과 맞서 싸웠던 둘째 아들인 고인후와 유팽로·안영이 모두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과 함께 전사하였고 큰아들인 고종후만 겨우 살았다. 아버지와 아우를 잃은 그는 다시 의병을 일으켜 진주성을 지키기 위해 싸웠으나 성이 함락되자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하여 자결하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인 선종 31년(1603) 광주 제봉산 아래 5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사당을 마련하였고 나라에서 ‘포충사’라는 이름을 내렸다.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 장성의 필암서원과 함께 훼손되지 않은 전라도 지방의 2개 서원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일제시대 때 폐사되었다가 유림들이 다시 세웠고 그 뒤 1978년 정부에서 벌인 정화작업으로 예전에 있었던 사당 건물은 보수되고 새로운 사당을 세웠다. 사당 앞에는 동재와 서재, 강당과 그의 유품을 보관하고 있는 장서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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