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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음악이야기/옛가요

[경산출신 가수] 경북 경산 남매공원에 세워진 가수 방운아 노래비

지송나무 2020. 5. 10. 15:58

 

 

 [경산출신 가수] 경북 경산 남매공원에 세워진 가수 방운아 노래비 
 

경산 출신으로 1950년대 인기 대중가수였던 방운아 선생의 노래비가 경산시보건소 뒷편 남매공원에 세워졌다.
 경산시와 방운아노래비건립추친위원회(위원장 박종철)가 결성되어 원로가수 남백송·명국환 씨, 지역 기관단체장, 시민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방운아 선생 노래비 제막식을 가졌다고 한다.
시비 8천만원을 들여 남매공원 옆에 세워진 노래비는 가로 3m, 세로 2.5m, 폭 1.5m 규모로 방운아 선생의 흉상과 대표곡 ‘마음의 자유천지’를 담은 비석 등으로 만들어졌다.
지난해 9월 ‘노래비 건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된 이래, 관련 자료 수집, 학술 세미나를 거쳐 올해 초 비 제작에 들어가 지난달 제작 및 설치를 완료했다. 노래비의 조각은 지역 조각가인 박철현·김형태 씨가 맡았다.
서상동 출신인 방운아 선생(본명 방창만·1930~2005년)은 1950년 한국전쟁 전후에 데뷔한 이래 심신이 지친 국민에게 따뜻한 격려와 위로를 안겨주는 많은 노래를 발표했다.
데뷔 이후 대표곡인 ‘마음의 자유천지’를 비롯해 ‘부산 행진곡’, ‘인생은 나그네’, ‘경상도 사나이’ 등 122편의 가요를 발표했다.
특히, 선생의 노래에는 자신의 고향인 경산에 대한 그리움과 향수가 가사마다 새겨져 있으며 민족사적 테마와 전통, 세태풍자, 풍물예찬 테마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박종철 위원장은 “방운아 선생의 노래는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기억해 다시는 이 고통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한다.”고 말했다.




▼ 제막식에 커팅하는 원로가수 남백송·명국환 씨, 지역 기관단체장
방 운 아 (방 태 원)


현재 이 분을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다고 할 수는 없으나, 1950년대 그야말로 우리 가요계를 평정했던 대 스타였다.

1931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방창만(方昌萬)이다. 1952년 전쟁 중 대구 오리엔트레코드사가 주최한 콩쿨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여 가요계에 첫 발을 내딛게 된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꼴망태 시절”을 취입하면서부터인데, 전쟁 후 빅토리레코드에서 방운아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작곡가 박시춘과의 인연으로 “여수야화”를 취입하여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백영호 작곡의 “마음의 자유천지”가 대 히트하면서 일약 스타급 가수에 오르게 되는데, 이 시기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때가 1956년이었다.

계속 영화주제가 “두 남매”, “한 많은 청춘”, “인생은 고해련가” 등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인기는 최고의 절정에 이르게 된다.

이 시기 미도파레코드로 이적하여 방태원(方太園)이라는 예명으로 “부산 행진곡”을 취입하는 등, 인기를 유지했다.

1960년대까지도 활발히 활동하며 많은 곡을 취입하였으나, 홀연히 무대를 떠나고 만다. 이후 1980년대 본격적인 TV시대가 열리면서, 쇼프로에 원로가수로 출연하며 활동을 재개했다.

가요무대나 쇼 특급 등 여러 가요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왕년의 히트곡을 부르면서 1950년대를 살았던 가요 팬들에게 아련한 향수를 일으켜주는 역할을 하던 사람이 바로 방운아다.

이후 원로가수가 설 무대가 점점 줄어들자, 2000년대에 들어 공중파 방송에는 두 번 밖에 출연하지 않았다.

2005년까지도 건강이 무척 괜찮은 편이었으나, 갑자기 평소 앓고 있던 병이 악화되어 2006년 6월 15일, 향년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순전히 내가 생각하는 기준이기는 하지만, 대표적인 히트곡으로는 “마음의 자유천지”, “두 남매”, “부산 행진곡”, “여수야화”, “한 많은 청춘”, “오백년 고려성”, “인생은 나그네” 등이 있다.

나는 특히 “여수야화”를 좋아하는데, 노래방에 이 노래의 반주가 없어서 반주에 맞추어서 불러보지는 못했다.

이 노래는 가요114에 방운아라는 이름으로 된 음반이 세 장, 방태원이라는 이름으로 된 음반이 네 장이 있는데, 가사에 그 중 하나만 작곡가가 박시춘으로 표시되어 있고, 나머지는 손목인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손목인의 곡으로 알고 있었다. 방운아를 잘 아는 분이 박시춘의 곡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박시춘의 곡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노래방에서는 가끔 “두 남매”를 부른다. 어느 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불렀더니, 파란하늘님이 노래가 마음에 든다면서 다음번에는 자신이 부르는데 나보다 훨씬 더 잘 불렀다.

나는 “인생은 나그네”도 좋아하는데, 금영 반주기와 태진 반주기가 하나는 곡이 너무 빠르고 하나는 곡이 너무 느려서 잘 부르지 않는다.

방운아는 영화 주제곡을 많이 불렀고, 작곡가 백영호의 곡을 많이 부른 가수 중의 한 사람이다. 백영호의 곡 중에는 “추풍령”, “해운대 에레지” 등 다른 가수가 불렀던 곡을 다시 부르기도 했다.

방운아는 항상 변함없는 목소리로 팬들을 매료시키고, 또 항상 바르고 검소한 생활을 함으로써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었던 이 시대에 가장 바르고 떳떳했던 가수라고 할 수 있다.



어릴때 동네 형님들이 열심히 부르던 노래가 방운아(방태원)노래가 많았다.
방운아 가수는 저와 동향인사로  자랑스럽고 감동을 주어 알려진 자료와 찰영한 자료로 포스팅해 보았다.  
한번 탑방해 보시길.........



한 많은 청춘/방운아
1.
한많은 청춘속에 희망을 찾어
슬픔을 안은채 동수는 간다
마음의 불구자가 가야할
가야할 길은 어데냐
혜련아 혜련아 외상없는 인생열차에
몸을실어 가야할 나그네-길

2.
짓밟힌 청춘속에 몸부림 치며
사랑을 안은채 동수는 간다
이몸과 이마음이 찾을길은
찾을길은 하나다
영애야 영애야 참된사랑 간직하여
영원토록 행복될 청춘의-길

 

 
   




 
인생은 나그네
 
작사 : 반야월
작곡 : 박시춘 

노래 : 방운아(방태원)1931-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