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대통령 됐다면 IMF 없었을 것" 이런 평가 나온 '韓거인'
한국 경제 거장의 프론티어 정신 재조명
흙수저 출신, 기업인과 정치인으로 활동
고(故) 정주영 (1915~2001)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대표적인 ‘흙수저’였다. 가난한 농부의 맏아들로 태어나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끈 프런티어였다.『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회고록 제목처럼 그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정주영 회장이 저 세상으로 돌아간 지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이제 20~30대는 그가 누군지 잘 모른다. 최근 발간된 『정주영이 누구예요』(이민우 지음, LiSa)는 한국 경제를 일궈낸 선구자이자 대통령을 꿈꿨던 정치인이었던 그의 삶을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한 책이다. 정 회장이 젊은 시절 쌀집 종업원으로 일했을 당시의 일화는 물론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보석 같은 에피소드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정 회장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저자가 오랜 세월에 걸쳐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여러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축적한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기업가 정주영은 물론 정치인(대통령 후보), 체육인(대한체육회장)으로 활동했던 거인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만약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이 됐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역사에 가정이란 없지만, 이 책을 쓴 저자(이민우 전 중앙일보 부국장)는 정 회장이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면 최소한 1990년대 말의 국가 부도 사태는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던 정 회장이 97년 대선에 다시 도전하려고 했다는 사실도 처음으로 밝힌다. 당시 82세의 정 회장은 고령에도 정치적 재기를 노리며 대선 ‘재수’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대선 출마를 반대했던 측근 이내흔 사장이 정 회장의 뜻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후보 등록을 하지 않고 잠적해 버렸다는 에피소드도 전한다.
정 회장의 꿈 '대북사업' 은 '진심'
정치적 재기의 꿈이 무산된 이후 실의에 빠졌던 정 회장은 대북 사업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한다. 그의 고향인 금강산 관광 상품을 개발해 전쟁 위협도 막고 평화통일로 갈 수 있는 첫 단추를 끼우겠다는 구상을 실행으로 옮겼다.
1998년 6월 소 500마리를 끌고 판문점을 통해 북한 방문길에 올랐던 건 모두가 잘 아는 사실이다. 소떼를 끌고 육로를 통해 북한을 방문한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는 군사 시설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북한 군부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지만, 정 회장은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의 담판을 통해 뜻을 관철시켰다.
그해 10월엔 다시 501마리의 소를 끌고 북한을 방문한다. 당초 북한에 약속한 건 1000마리였는데 처음엔 500마리, 두 번째는 501마리를 끌고 갔다는 것이다. 왜 1000이 아니고 1001마리인가. “1000은 끝나는 수지만, 1001은 이어지는 수”라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었다. 남북 협력이 단순히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라는 뜻에서 1000마리가 아닌 1001마리를 선물했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정주영이 단순히 돈만 많이 벌어들인 기업가가 아니라 고뇌하는 ‘철학자’였다고 소개한다. 정 회장은 또 북한에 보낼 소를 고를 때 건강한 소는 물론이고, 임신한 소를 우선적으로 포함하라고 지시했다는 일화도 나온다. 진심으로 북한과 고향을 도와주고 싶어했다는 것이다.
정주영의 도전정신은 "이봐, 해봤어?"
강원도 시골 청년 정주영은 젊은 시절부터 남달랐던 모양이다. 정주영은 20세 때인 1934년 서울의 한 쌀가게(복흥상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배달꾼으로 시작했지만, 계산도 빨라 회계는 물론 창고정리까지 도맡았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나간 정주영은 진흙투성이가 돼 밤늦게 쌀가게로 돌아온다. 쌀가게 주인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탈 줄 아느냐”고 물었는데 생전 한 번도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던 청년 정주영은 “탈 줄 안다”고 대답하고는 자전거를 끌고 비 내리는 질척한 거리로 배달을 하러 나섰다는 것이다. “이봐, 해봤어?”라는 정주영의 도전 정신은 타고난 성품이었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
정주영은 의리의 사나이였지만,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정 회장은 기업가로 크게 성공한 뒤에도 쌀집 주인이었던 할머니를 챙겼다. 특히 1984년엔 현대그룹 영빈관으로 쌀집 할머니를 초청해 구순 잔치까지 열어줬다. 그 자리에서 술을 한잔 걸친 정 회장은 마나님 속을 많이 썩였던지 “용서를 빌어야 한다”며 부인에게 넙죽 절을 했다. 그리고는 그 모임에 참석한 남자들한테 모두 자기 부인에게 절하라고 호통을 쳤다는 일화도 전한다.
저자와 정주영 회장의 특별한 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정 회장이 서울에 올라와 직원으로 일했던 쌀집 주인 아주머니(차소둑 할머니)의 장손이다.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를 통해 정 회장의 일화를 접했던 저자는 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 부국장과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을 지냈다. 중앙일보 스포츠 기자 시절엔 정 회장을 체육인(대한체육회장)으로 만나기도 했다.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저자의 소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강철같은 의지의 거인'
정주영은 강철같은 의지로 한국 경제를 일으킨 거인이었다. 그러나 8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약점과 허물이 없을 순 없다. 특히 정치인 정주영의 공과는 훗날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여기서 그 허물을 캐묻는 게 무슨 소용이랴.
결국 팔순을 바라보는 저자는 정주영 회장의 삶을 조명한 이 책을 통해 ‘근면’과 ‘절약’이란 덕목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다.(정 회장은 현대건설을 창업한 뒤 사훈을 '검소'로 정했다.) '근면'과 '절약'은 ‘워라밸’을 부르짖는 MZ세대에게는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사전에나 있는 단어로 치부하거나 꼰대의 잔소리 쯤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래도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정주영의 정신, 노력, 철학을 알아야 한다고. 코로나19를 극복하려는 찰나, 또다른 경제 위기에 맞닦뜨린 요즘 우리가 되새겨야 할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정제원 기자 chung.jeh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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