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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마음의 양식/좋은글

내 인생의 두번째 사랑ㅣ 전유진 - 가슴앓이

지송나무 2022. 10. 20. 10:21

 

디지털 일러스트레이터

 

내 인생의 두번째 사랑

 

 지난 5년 동안 아내 몫까지 하며 아들을 키우려니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그런 대로 잘 지낸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촌 누님께서 전화를 하셔서 '세월도 이만큼 흘렀고 하니 이제는 재혼을 해야지. 떠나간 사람도 그걸원할 거야.' 하며 사람을 소개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국 누님과 몇 번의 통화 끝에 저와 동갑이고, 동생들과 어머님 뒷바라지하느라 시집을 못 갔다는 그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맞선보러 나가던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문갑에 놓인 아내 사진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혼잣말로 사과했습니다.

 

'여보! 미안해. 혼자 살기 참 힘드네. 이해해 줘….' 듣는지마는지 사진 속의 아내는 그저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그리곤 약속 장소로 나갔습니다

그녀가 다가와 성규 씨인가요?' 라고 물었습니다. 제가보기에 그녀의 첫 인상이 참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저는 문득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내를 병으로 잃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상대방 건강에 관심이 많다고요.

그녀 역시 제 얘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제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6남매의 맏딸인 그녀는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와 동생들 뒷바라지에,또 동생들 시집 장가 보내느라 정작 자신은 연애 한 번 해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잊는 어머니마저 돌아가셔서 늦었지만 자신의 행복을 찾으려고 저를 만나러 나왔다고 했습니다. 그후, 만나는 횟수가 거듭되자 저도 모르게제 황량했던 가슴속에서 점차 따뜻한 모닥불이 피어 오르는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그녀가 자기 집으로 저를 초대했습니다.

그녀는거실은 춥다며 안방으로 저를 안내했습니다. 미색벽지에 노란 장판이 깔린 그녀의 방. 그방에서 그녀는, '원래 엄마가 쓰시던 방인데 이제는 제가 써요. 하고 수줍게 웃으며 따뜻한 생강차를 따라왔습니다. 그날 저는 오래도록 그녀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그리고 그녀에게 정식으로 청혼을 했습니다.

 

"못난 사람이고 마음에 상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괜찮다면 수진 씨, 사랑하고 싶습니다. 저와 결혼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제 청혼에 그녀는 일 주일만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초조한 일 주일을 보낸 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그녀는 뜻밖에도 너무도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자기와 성격도 다르고, 취미도 다르고, 종교도 달라서 안 되겠다고요. 인연이아닌 것 같으니 다음에 좋은 사람 만나라면서 참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동안 그녀가 제게 보여준 호의가 다 거짓이었을까요?

정말 견딜 수 없이 마음이 아팠습니다.그 상처를 다스리기까지 오래도록 전 혼자 가슴앓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 어떤 집안 행사로 저는 사촌 누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촌 누님이 저를 보자마자 대뜸 그랬습니다. "동생, 수진이 소식 못 들었지? 나도 얼마 전에 같이 서예 하던 사람 만나서 소식들었는데 수진이가 죽었다네.

위암으로…. 동생이랑 결혼하려고 맘 먹고 종합검진받으러 갔다가 위암진단을 받았나 봐. 7개월동안 혼자 투병하다가 석달 전에 세상 떠났대…. 너무안 됐어…. 착하고 젊은 사람이. 쯧쯧…." 순간 저는 시야가 갑자기 뿌옇게 흐려지면서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요?

 

왜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떠나야만 할까요? .

그후 저는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그녀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다는 용미리 추모의집을 찾아 갔습니다. 아들도 함께 데려갔지요. 납골당….칸칸이 안치된 작은 사진속에 낯익은 그녀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전히그 갈색 코트를 입고 희미하게 웃고 있는 청초한 그녀. 저는 아들과 함께 들고 간 꽃을 그녀앞에 내려놓으며 말했습니다.

 

"수진씨, 우리 아들이에요. 절 받아요…." 아들도 제 마음을 아는지 마치 자기 엄마에게 하듯 깎듯이 절을 했습니다. 외롭게 앓다 혼자 그 먼 길 떠난 수진 씨,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시길…. 그날 아들과 손잡고 그곳을 내려오면서 저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아들아!

아빠는 이제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련다. 내 인생의 사랑은 두 여자로 충분히 족하니까….

 

 - 월간 낮은울타리의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중에서-

 

 

 

전유진 - 가슴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