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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취미·레저생활/자전거 이야기

동갑내기 부부의 자전거로 유라시아

지송나무 2015. 6. 3. 08:46

동갑내기 부부의 자전거로 유라시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동갑내기 부부 이성종, 손지현 씨는 지난 2007년 호주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자전거로 여행해오고 있다.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던 그들의 여정은 이제 단순한 여행을 넘어 사람과 환경에 대한 꽤 많은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번 여행기는 부부의 여행 중 2011년부터 2012년까지의 유라시아 횡단 부분을 연재할 예정이다. 이 이야기는 단행본 '거침없이 방황하고 뜨겁게 돌아오라'라는 제목으로 출판되기도 했다. 하지만 여기서는 책과 같은 내용이 아니라 책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 그 중에서도 사람들과의 만남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모험가 부부라는 꿈을 향해 오늘도 페달을 밟는 그들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자전거 박람회에 우연히 들르게 된 우리.

한국과는 전혀 다른 자전거 문화와 철학 앞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된다. 또 자전거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현지인에게 직접 초대받기도 하고, 자전거로 여행하는 동료들을 만나기도 하며 점점 더 여행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하지만 즐겁기만 하던 우리 여행에 처음으로 닥친 난관.

그것은 바로 슬로베니아의 알프스 산맥이었다. 오르막이라면 쥐약인 내가 과연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일단은 부딪혀보는 수밖에.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자전거 박람회

자전거가 한 달이나 늦게 준비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어버린 계획이 있다. 바로 세계 최대 자전거 박람회인 '유로바이크'에 참관하기로 했던 것.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그때, 파도바에서 열리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의 자전거 박람회에 때맞춰 지나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곳에 가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던 정통 이탈리아 자전거들을 많이 볼 수 있을 터이고 또 동양의 자전거 여행객이 흔치 않은 만큼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으며 박람회장을 구경하게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일 거라는 생각이 들어 실망은 희망으로 바뀌었다.

파도바에서 열리는 이 자전거 박람회는 이탈리아에서는 꽤 큰 행사인 듯했다. 파도바 외곽에 들어서자 자전거 박람회를 알리는 커다란 광고판도 보이고 행사장을 찾는 듯한 동호인들도 보였다. 동호인들이 타는 자전거를 살핀 결과, 이탈리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광범위하게 자전거를 즐기며 확실히 산악자전거보다는 로드바이크의 인기가 많은 듯했다. 막상 행사장 내부로 들어가 둘러보니 의외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 바이크쇼와 비슷하거나 조금 더 큰 정도. 하지만 행사장으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양하고도 독특한 볼거리들이 있어 우리 부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파도바에서 열린 이탈리아 최대 자전거 박람회 '엑스포비씨(EXPOBICI)'

특히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빼앗긴 것은 바로 화려한 수제 자전거들이었다. 이탈리아의 소규모 공방에서 출품한, 장인 정신이 듬뿍 깃든 수제 자전거들이 반짝이며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고 그에 어울리는 가죽 공예품들도 즐비했다. 이에 질세라 비앙키, 치넬리 등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탈리아 대표 브랜드에서도 깊은 연륜과 내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도록 오랜 역사가 깃든 클래식 자전거에서부터 최신 기술이 집약된 신형 자전거까지 총망라해 꾸며 놓았다.

이뿐이랴. 이탈리아 자전거라 하면 캄파놀료도 빠질 수 없다. 그들 역시 오랜 세월 쌓아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한 새로운 부품들을 내세우며 신기술을 뽐내고 있었다. 그런가 하면 거침없이 눈길을 주행하는 팻바이크나 여행용 자전거, 여성용 자전거, 전기 자전거 등도 많이 출품되어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BMX 동호인들의 공연이 펼쳐져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클래식 자전거 부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열렸는데 평소 구하기 어려웠던 아이템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엑스포비씨'에서는 다양한 공방에서 만든 클래식 자전거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박람회장의 한쪽 구석에는 클래식 자전거 부품을 판매하는 특설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점도 있었다. 이탈리아 사람들과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어려웠다는 사실.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영어가 잘 안 통하는 듯했다. 게다가 행사장 내에는 자전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었다는 것도 아쉬움을 더했다.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릴 수 있을 테니, 자전거 여행에 관심이 있는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될 기회가 생길 거라는 기대를 조금은 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직도 자전거에 대한 장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 그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자전거 문화를 접해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자전거의 역사에 관한 책에서부터 여행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자전거 관련 책을 출판하는 '에디씨클로(ediciclo)'의 부스


친절했던 그의 정체

자전거 박람회 구경을 마치고 슬로베니아를 향해 다시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한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나이는 우리보다 대여섯 살 정도 많아 보였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자기도 자전거 여행을 좋아한다며 자신의 집에서 며칠간 머물다 가라는 친절을 우리에게 베풀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집으로 초대받는 일이 굉장히 드물었다. 가끔 바비큐에 초대받더라도 식사를 마친 뒤 "하룻밤 묵어갈 곳이 필요한데 혹시 마당에서 캠핑해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면 "여기서 한 50km 정도만 더 가면 캠프장이 있어. 약도 그려줄게."라며 안내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문화겠지만 어째 적응 안 되는 것은 사실.

또 한 번은 시골 마을을 지나가고 있을 때였다. 한 할아버지가 정원을 손질하다 말고 우리를 관심 있게 쳐다보시더니 박수를 쳐 주시는 거다.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할아버지께 혹시 그 근처에 캠핑할 만한 곳이 있는지 여쭤 보았다. 그분은 흔쾌히 집 안 창고 한편에 자리를 마련해 주셨지만,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우리를 반기지 않았던 것. 결국, 가족들은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했고, 이미 시간이 꽤 늦은지라 차마 다른 곳으로 갈 수 없었던 우리는 굉장히 불편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 일찍, 도둑고양이처럼 그 집을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들이 있었던지라 웬 낯선 아저씨가 쫓아와서는 물어보기도 전에 먼저 집으로 초대하니 약간의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어쨌거나 흔치 않은 기회가 찾아왔으니 새로운 친구도 사귀고 이탈리아의 가정 문화도 체험할 겸 못 이기는 척 그의 집으로 따라갔다.

*우리를 집으로 초대해준 마테오 아저씨

아저씨의 이름은 마테오. 수제 구두를 만드는 독신남이었다. 그의 집은 깔끔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주 단순한 가구들만 놓여 있었고, 텔레비전이 없는 대신 많은 책이 꽂혀 있었다. 벽 한쪽에는 젊은 시절 자전거로 유럽을 여행했었다는 아저씨의 사진도 걸려 있었다.

이대장은 그 집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기도 전에 아저씨의 자전거를 손보기 시작했다. 함께 집으로 오던 중 바퀴가 펑크 났기 때문. 하룻밤 신세 지는 입장이니 자전거를 고쳐주고 점수를 따려는 심산이었다. 그런 이대장의 모습을 아저씨는 괜한 일을 시킨 것은 아닌지 염려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펑크 수리쯤 식은 죽 먹기라는 듯 이대장이 금방 고쳐내자 마테오 아저씨는 기쁜 마음에 소고기를 사와 맥주 파티를 즐기자는 제안을 했다.

정육점이 꽤 먼 곳에 있었기에 나는 집에 남고 두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출발하고 한참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인 게다. 둘은 거의 한 시간 반 만에 돌아왔는데 처음에는 정육점이 그렇게나 멀리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그동안 두 남자가 부쩍 친해진 것으로 보이길래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신나는 바비큐 파티. 고기와 소지지, 파인애플이 맛있는 향을 풍기며 익어간다.

어쨌거나 마테오 아저씨 덕분에 우리는 바비큐도 맛있게 먹었고, 다음 날에는 그 지역에서 유명한 베네치아 공화국의 빌라를 구경했다. 빌라는 과거 베네치아가 부강했던 시절 부를 축적한 귀족들의 집으로 그 엄청난 크기와 화려함으로 미루어 보아 과거 베네치아가 얼마나 부강했던 곳인지 알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이대장보다는 내가 사교성이 더 좋은 편이라 남녀를 불문하고 나와 친해지는 경우가 더 많은데 아저씨는 오히려 나와의 대화는 꺼리고 이대장하고만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바퀴를 고쳐주고 바비큐 준비를 하면서 많이 친해졌기 때문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불현듯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예를 들면 왠지 아저씨가 남자를…

그때부터 기억을 되짚어 보기로 했다. 먼저, 꽤 준수한 외모에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마테오 아저씨가 그 나이에도 혼자라는 점. 여자 친구가 왜 없는지 물어봤더니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안 했던 점. 남성 취향이라고 보기엔 너무 깔끔했던 인테리어. 왠지 모르게 이상한 말투. 마지막으로 이대장을 바라보는 저 눈빛!

물론 성적소수자에게 악감정은 없다. 오히려 호기심이 생기는 편이랄까. 하지만 그 대상자가 내 남편이라는 사실이 난감할 뿐. 더구나 이대장은 눈치도 없이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선 뭐가 그리 좋은지 행복한 얼굴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 모두는 각자의 신념과 철학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비범한 사람들 또한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행이라는 과정은 일상 속의 내가 아닌 또 다른 내가 되는 과정이기에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 더 많은 사람의 입장을 공감하고 수용할 수 있으리라.

*알피니 다리 근처에서 발견한 창문. 이탈리아의 감성이 묻어 나는 듯.

마테오 아저씨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 이러한 사실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지금까지 만나 본 이탈리아 사람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친절하고 관심사도 비슷해 큰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개인의 비범한 취향만으로 사람을 싫어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에겐 바르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저씨를 조금 더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론 아직은 조금 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지만. 그러니 부디 내 마음이 준비될 때까지 둘 사이에 아무 일이 없길.

* 위의 글은 본지의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여행자의 마음가짐

이탈리아와 작별인사를 나눌 시간이 왔다. 떠나기 전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독주인 그라파의 본 고장 바사노 델 그라파에 들러 알피니 다리를 구경하고 그라파도 한 잔 시음해 봤다. 술맛은 잘 몰라 뭐라 딱히 이야기할 순 없으나 정말 독하긴 독했다.

*이탈리아를 떠나기 전 들렀던 바사노 델 그라파의 명물, 알피니 다리. 드라마 아테나 전쟁의 여신 촬영장소로도 알려졌다.

그리고는 다시 열심히 달려 슬로베니아에 도착했다. 육로로 국경을 넘은 것은 처음. 슬로베니아 역시 솅겐 조약이 적용되는 유럽 연합국이기에 입국 심사가 까다롭진 않았다. 마치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듯이 그냥 표지판 하나 달랑 놓여 있을 뿐이라 오히려 약간 김이 샜지만, 그래도 처음이라는 것에 의의를 두며 기념사진을 찍고 유라시아 자전거 여행 두 번째인 나라 슬로베니아에 입국했다. 지금부터 우리의 목적지는 알프스 산맥의 끝자락. 하지만 끝자락이라고 해도 그 산세가 굉장히 험하다. 사실 나는 오르막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고 어떻게 보면 싫어하는 쪽에 가깝지만, 이대장은 나와 반대로 산을 좋아하고 비포장도로를 좋아한다. 그래도 언제나 한 사람의 취향대로 다닐 수는 없는 법이니 이번만큼은 이대장의 의견을 존중해 험난한 산세를 타보기로 했다. 일단 해보고 정 안돼서 포기해도 후회는 없을 테니까.

*알프스에서 만난 오스트리아 친구들.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반가운 모습이 보였다. 바로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두 친구를 만난 것이다. 오스트리아에서부터 시작해 유럽을 여행 중이라는 두 친구는 짐이 진짜 많았다. 패니어 뒤에는 트럭이라는 것을 알리는 표식을 붙여 놓는가 하면 심지어 통기타까지 싣고 있었다. 이렇게 많은 짐을 싣고 가파른 알프스 산맥을 여행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도 되었다. 어쨌거나 나는 저 사람들에 비하면 매우 가벼운 자전거로 여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슬로베니아에 들어서자 위풍당당한 알프스 산맥이 우리를 반긴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들은 대화 끝에 헤어지며 조금만 더 가면 있는 캠프장에 자전거 여행자 친구들 몇 명이 또 있으니 가서 만나보라 권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자전거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두 팀이나 만나게 되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것도 이런 알프스 산맥의 중턱에서.

*가파른 경사 중간에서 만나 짧은 이야기밖에 나누지 못했지만 반가웠어.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앞서 그들이 말한 캠프장을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묵을 생각으로 안쪽에 들어가니 한참 떠날 채비를 하는 자전거 여행자 한 팀을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오후 3시, 우리는 잘 곳을 찾아 이곳에 왔는데, 이들은 이제 떠난다고 한다. 우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여행 방식이다.

*자전거 여행 중인 독일 친구들과의 첫 만남. 도대체 빨래를 며칠 동안 안 한 거니.

남자 둘과 여자 하나였던 그들은 독일에서 왔다고 했다. 자전거로 유럽 여행 중이긴 하지만, 주목적은 암벽등반이라던 그들에게 자전거는 장비와 사람을 실어주는 이동수단일 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친구들도 아까 만난 두 명과 마찬가지로 짐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짐이 많은 멤버는 심지어 자전거조차 고장은 안 날까 싶은 고물이었다. 보기에도 아찔할 만큼 어마어마한 양인지라 여행은 고사하고 앞으로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아니나 다를까. 캠프장을 미처 채 벗어나기도 전에 자전거에 고장이 나 한참을 고친 후에야 그들은 겨우 다시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며 내게 없던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었다. 바로 여행을 그 자체로 즐기는 마음. 어찌 보면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이들은 이런 고물 자전거로 여행한다는 것 자체가 마치 즐거운 도전이라는 듯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괴짜면 어때. 유쾌하고 즐거웠던 독일 친구들과의 만남을 기념하며.

나는 왜 저들처럼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고 있던 것일까. 긴 오르막은 단지 자유로운 여행에서의 힘든 과정일 뿐 우리의 여행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이다. 순간 자신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들을 보며 여행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된 나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한 발 한 발 페달을 꾹꾹 밟아 나아갔다. 힘들 때마다 몰려 오는 모든 짜증을 벗어 던지기 위해 독일의 자전거 여행자들이 지었던 해맑은 표정을 기억했다. 내 마음이 바뀌니 기분도 좋아졌고, 그렇게 힘들게만 느껴졌던 오르막도 어느새 즐거운 여행길로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알프스 산맥의 정상에 섰을 때,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환희가 나를 감쌌다. 힘든 오르막을 정복한 것 때문이 아니라 힘든 것도 즐겁게 여길 수 있는 마음을 맛본 희열 때문이었다.


글/사진: 이성종, 손지현
홈페이지: coupletour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