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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세계로 미래로/한국의 인물

'살아있는 영웅' 백선엽 장군을 스스로 비하하는 나라

지송나무 2015. 6. 11. 10:53

'살아있는 영웅' 백선엽 장군을 스스로 비하하는 나라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전쟁 영웅’을 스스로 비하(卑下)하는 나라는?

 

 

  •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입력 : 2013.05.06 03:03

    백선엽 장군 명예원수 재추대론 또 물거품 되나?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지난해 10월, 31세의 민족문제연구소 출신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할아버지뻘인 백선엽 장군(白善燁·예비역 육군대장)을 ‘민족 반역자’로 매도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습니다. 그 백선엽 장군은 1920년 10월 생으로 올해 94세인데, 걸음걸이나 기억력을 보면 절대 ‘노인’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도 아침 8시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6·25전사편찬자문위원장실로 출근합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 군 관련 인사들의 예방 일정들이 화이트보드에 빼곡합니다. 이왕우 보좌관(예비역 육군대령․육사 37기)은 “강연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건강 때문에) 만류를 하지만, ‘내 머릿 속에 있는 경험과 지식은 남김없이 전해주고 가련다’며 기꺼이 초청해 응하신다”고 했습니다.

    ‘자기 관리’도 철저합니다. 백 장군은 기분이 좋으면 반말을 하지만, 기분이 언짢으면 부하에게도 경어(敬語)를 씁니다. 그만큼 화를 참고 자기 절제를 잘 하십니다. 그래선지 참 건강하고 ‘자애로운 스승’의 모습을 강하게 느낍니다.

     
     

    기자로서 백 장군을 만난 지 올해로 만 10년째인 저는 지금도 한 달에 한번 꼴로 직접 찾아가 문안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 4월 26일 전쟁기념관 집무실에서 뵜는데, 백 장군은 “북한 김정은 정권이 체제 결속을 위해 도발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한미동맹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하는 길만이 북의 도발을 막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 건군(建軍)에 참여하고 미국 전사(戰史)에서 6·25전쟁 최악의 전투로 기록된 낙동강 방어선상의 다부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평양에 선봉으로 입성한 백 장군은 6·25전쟁의 ‘살아 있는 전설(living legend)’이자, ‘한국군 현대화의 아버지’ 입니다.

    극소수 예비역과 좌파 단체 등의 반대로 ‘전쟁 영웅’ 무산

    백선엽 장군 얘기를 꺼낸 까닭은 백 장군을 명예원수로 재추대하자는 논의가 최근 다시 불붙고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6·25전쟁 정전(停戰) 60주년을 맞아 우리 정부는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행사를 준비 중이며, 미국도 정전 60주년 행사를 크게 펼칠 계획입니다.

    올 7월 27일에는 워싱턴DC 한국전참전비 앞에서 미국 정부 주관으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기념식을 열고 현직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참석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미국 관계기관에서 워싱턴 정전협정 기념행사에 백선엽 장군을 초청했고, 백 장군이 미국 출장에 따른 건강상의 문제가 없다는 판단에 따라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 한 일본신문의 간부는 도쿄에서 전화를 걸어와 “백선엽 장군님이 명예원수가 됐느냐”고 묻더군요. 그 기자는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 논의가 한창인 2009년 말 귀임(歸任)했기 때문에 상황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는 예비역 단체들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나오다 2009년 ‘6·25전쟁 기념사업회’가 출범하면서 14개 핵심사업에 포함시켰습니다. 국군기무사령부는 군 원로들과 현역들의 의견을 수렴해 김태영 당시 국방부장관을 거쳐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대동강변에서 미군장교로부터 적의 상황을 설명받고 있는 백선엽 장군
     
    대동강변에서 미군장교로부터 적의 상황을 설명받고 있는 백선엽 장군. /조선일보 DB
     

    당시 김종태 기무사령관(현 새누리당 의원)은 “명예원수 추대는 백선엽 장군 개인의 명예로 끝나지 않고 6·25전쟁 참전자들의 자긍심과 국민들의 안보의식도 올라갈 것”이라고 보고했고,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은 “군 원로 문제이므로 국방부에서 처리하라”고 했죠.

    국방부는 당시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령으로 명예원수를 추대하기로 했으나, 국방부 법무관리관실에서 법률 검토를 해본 결과, ‘군 인사법 24조’의 명예진급 규정에는 중령ㆍ대령 계급만 해당돼 있어, 현행법상 명예원수 수여와 관련된 법적 근거가 없는 게 드러났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돼 국회에서 명예원수에 대한 별도의 법을 제정하거나 군 인사법을 개정해야 했습니다.

    2010년 4월, 국방부는 ‘퇴역군인에 대한 명예원수 수여규정(가칭)’이란 대통령령을 제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그러나 6·25전쟁 기념일이 임박한 시점에서 이번에는 극소수의 예비역들이 “백 장군이 6·25전쟁을 혼자 다 한 것처럼 돼 있는데 부하 장병의 공도 크다”, “실패와 잘못도 적지 않다”는 논리를 펴며 반대하면서, 이 일은 급격히 추진동력을 상실했습니다.

    특히 백 장군이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데다 광복회까지 반대의사를 표명한 게 결정적이었지요. 광복회의 한 관계자는 “우리 군이 독립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독립군을 토벌하는 부대(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던 백선엽 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한다는 것은 건군 이념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허남성 국방대 명예교수는 “좌파들은 6·25전쟁 기간 중 후방에서 준동하던 빨치산들에게 섬멸적 타격을 준 백선엽, 김백일 장군 두 사람을 끌어내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며 “두 사람은 만군(滿軍)에서 공산당을 상대해 왔고, 소련에 대한 어떤 환상도 갖지 않았고, 따라서 투철한 반공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국방부는 좌파단체까지 가세해 일제히 ‘흠집내기’에 나설 경우, 백 장군이 봉변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 백 장군에 대한 명예원수 추대 건을 사실상 보류했습니다. 

    예비역 장성들, “백선엽 장군를 명예원수로 추대하자”고 한 목소리

    원수(元帥)란 군인으로서 입신(入神)의 경지에 든 경우를 말하는데, 세계 여라 나라에서는 주로 전시에 원수가 배출됐으나 우리나라엔 없습니다. 북한에선 김일성이 대원수로, 김정일·이을설이 원수로 불립니다. 영국의 버나드 몽고메리, 독일의 롬멜,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존 조셉 퍼싱, 소련의 게오르기 주코프,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 오야마 이와오(大山巖) 등이 그에 해당합니다.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미국은 ‘없는 영웅’을 만들기도 하는데, 우리는 영웅을 비하(卑下)하니 참 개탄스럽다”고 했습니다.  김국헌 전 국방부 군비통제관(예비역 육군 소장)도 “우리는 수많은 전쟁을 치렀으면서도 왜 영웅에 인색한지 모르겠다”며 “미국은 6·25전쟁에서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브래들리 합참의장을 곧바로 원수로 승진시켰다”고 말했습니다.

    
	1951년 8월 2일 정전회담이 결렬된 뒤 지프를 타고 나오는 유엔군측 대표단. 헨리 호디스 미 육군소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미소 지으며 백선엽 소장(맨 왼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알레이 버크 미 해군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웃고 있다
     
    1951년 8월 2일 정전회담이 결렬된 뒤 지프를 타고 나오는 유엔군측 대표단. 헨리 호디스 미 육군소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미소 지으며 백선엽 소장(맨 왼쪽)을 엄지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알레이 버크 미 해군소장(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웃고 있다. /김영준 시간여행 대표 제공
     

    6·25 정전 60주년이 다가오면서 예비역 단체들과 예비역 장성들을 중심으로 백선엽 장군에 대한 정부 차원의 기념관 건립과 명예원수 추대를 다시 한번 숙고해 추진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재향군인회의 한 관계자는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노(老) 장군의 삶을 통해 군심(軍心)을 결집하고, 6·25 참전국들도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에 적극적이어서 국격(國格) 제고의 계기”라며 “백 장군의 연세를 보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군사편찬연구소 남정옥 박사는 “이번에 명예원수를 추대한다면 꼭 1명으로 제한할 필요도 없다”며 “당시 60주년 행사를 앞두고 국방부에 백선엽 장군을 비롯해 밴 플리트ㆍ월턴 워커 8군사령관, 김종오 6사단장 등 복수 인사를 추천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미군 장성들을 명예원수로 추대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의 입장에서 볼때 한국은 역시 은혜를 아는 나라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도 거둘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김재창 장군은 “반대자들의 논리도 반대할 만한 명분인지 따져보고 경청해야 하지만 여태 나온 반대논리에는 찬동할 수 없다”며 “현 정부와 국방부 담당자들이 확고한 신념을 갖고 이 문제를 관철시켜야 한다”고 했습니다.

    벌써 워싱턴의 정전60주년 기념식장 모습이 궁금해집니다. 백선엽 장군이 대한민국 최초의 원수로서 별 다섯 달린 군복을 입고 나타날지, 아니면 평범한 양복차림일지 말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보다 ‘강단’ 있는 정부일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백 장군의 명예원수 추대에 달려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5/05/2013050501027.html?c_inside_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