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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세계로 미래로/외국의 인물

흔들림 없는 목표의식

지송나무 2015. 6. 13. 10:07

 

흔들림 없는 목표의식

 

 

 

 

 

미국과 소련의 생존과 자존심을 우주전쟁은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대통령 때 시작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폴로 프로그램(Apollo project)은 NASA가 추진한 휴먼 우주비행 계획 중 세 번째 프로젝트였고 첫 번째는 이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대통령시절 수행되어 미국 최초로 사람을 우주로 보내는 것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아폴로 프로그램(Apollo Project)은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행정부 때 한 사람을 저궤도에 올려 보내는 ‘머큐리 프로그램(Project Mercury)’의 후속으로 1960년 처음 구상되었지만, 3명을 우주로 보내고 달에 착륙시켜 다시 돌아오는 거대한 프로젝트에 지원되는 자금을 감당할 길이 없어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가 미국의 대통령에 취임했고, 1961년 그가 취임한지 3개월 만에 소련에 ‘유리 가가린(Yurii Gagarin)’이 인류최초로 지구궤도를 돈 우주비행사가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1957년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Sputnik)’가 미국 본토에 소련의 핵탄두를 쏘아 보낼 수 있음을 증명한 이후 또 다시 소련이 과학기술의 모든 분야에서 미국을 앞섰음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후루시초프(Nikita Sergeyevich Khrushchev) 공산당서기장은 가가린(Yurii Gagarin)을 “새로운 크리스토퍼 콜룸부스(Christopher Columbus)”라고 부르면서 이것을 계기로 소련 인민의 우수성과 공산주의 강력함이 이제 미국과는 비교할 수 없이 우월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려 했습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는 식의 이런 거만한 태도는 미국의 젊은 대통령의 자존심을 건드렸고 가가린의 지구궤도 유인비행 성공 8일 만에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는 우주개발위원장인 존슨(Lyndon B. Johnson)부통령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였습니다.

 

 

 

 

 

 

그리고 “우주에 실험실을 설치하는 것, 달을 여행하는 것, 달에 착륙하는 것, 사람들 달에 보내는 것 등을 통해 소련을 이길 기회가 남아있는가? 극적인 승리를 보장해 줄 우주개발 프로그램은 없는가? 추가로 얼마만큼의 비용이 소요되는가? 기존의 프로그램들에 전력투구하고 있는가? 기대한 성과는 거두고 있는가? 등에 대해 최대한 빨리 답변을 해달라”고 적혀있는 메모를 전달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기는 했지만 인명을 우주에다 내버려두게 될지도 모르는 위험한 시도인데다가 성공여부의 불확실성 때문에 아무도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1969년 아폴로 프로그램이 성공하기까지 10여년이라는 시간 동안 미국은 240억 달러라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해야 했고 40만 명에 이르는 각계 전문가들과 2만 여 개의 민간 기업과 대학들이 매달려야 했습니다.

 

 

 

 

1967년 1월 27일에는 아폴로 1호(Apollo-1) 테스트를 하던 중 조종공간인 캐빈에 화재가 발생해 탑승자 버질 그리섬(Virgil Grissom), 에드 화이트(Edward White), 로저 채피(Roger Chaffee) 3명 전원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헌신이 있기도 했습니다.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의 결정에 대해 “이는 통신, 기상학, 군사정찰, 미래의 군사적, 과학적 이득과 연관되어 잘 진행되고 있는 여러 국가적 프로젝트들 중에서 하나를 쏙 빼내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의도입니다. 게다가 달에 최고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일은 분명 바보같은 짓입니다.” 라는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전 대통령의 비판은 상당히 뼈아픈 지적이었을 것입니다.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는 일자리 창출, 과학적 발견, 새로운 방어체계 같은 많은 이유들을 열거했지만 솔직히 누가 보아도 정말 불확실한 일에 대해 ‘영감’만으로 추진하는 것 같아 보였고, 아무도 실현되리라 생각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를 들고 다니며 미국 국민들을 설득하고 미의회에 가서 달 프로젝트에 대한 협조를 구하는 연설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인들은 리더가 하나의 목표에 모든 열정을 쏟을 때 그리고 구성원 전체가 그 열정이 결코 흔들리지 않는 진짜라는 걸 알게 될 때 일어 날 수 있는 놀라운 결과를 경험합니다.

 

 

 

 

 

드디어 소련의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우주개발에 대항하기 위해 약 30%의 자금이 더 지원되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고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가 공언한 10년의 기간이 거의 끝나가는 1969년 7월20일, 아폴로 11호는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 버즈 올드린(Buzz Aldrin),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를 태우고 마침내 인류의 염원인 달 착륙에 성공했습니다.

 

 

 

 

결국 이 결단은 구소련이 더 이상 우주개발계획은 물론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미국의 적수가 되지 못하게 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취업률을 올려서 경제를 살렸고, 국민들에게 용기와 자신감을 주면서 하나로 단합시키는 결실을 얻어냈습니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하늘에 띄운 이후로 66년 이란 짧은 시간 만에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긴 것은 물론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밑받침 되었지만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의 결단과 흔들림 없는 목표의식이 없었다면 분명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탁월하게 결단하고 그 결단에 흔들리지 않는 진짜 열정을 가진 케네디(John Fitzgerald Kennedy), 그는 미국 뿐 아니라 전 인류에게 역사상 가장 큰 꿈과 희망을 준 결단의 지도자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