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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마음의 양식/한문

도덕경 27장

지송나무 2019. 7. 29. 11:31



도덕경 27장



《정말로 잘하는 사람은 - 도에 따른 행동의 완벽성》

보통으로 걷는 사람은 발자국을 남기게 마련이다.

보통으로 말을 하는 사람은 말을 하다가 가끔씩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계산을 할 때 산대나 주판이나 계산기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

보통 문도 단단히 닫으려면 빗장을 걸어야 한다.

보통의 매듭도 튼튼히 매려면 단단히 묶어야 한다.

모두가 일상적, 상식적 세계에서 보통으로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일상적, 상식적 세계를 넘어서서 완벽한 선善의 경지에 이르면 이런 외부적인 것에서

완전히 자유스러워진다는 것이다.

도통을 하여 축지법縮地法이나 그 비슷한 능력을 발휘하게 됨으로 훨훨 날아가듯 가기 때문에

자국이나 흔적이 없이 다닐 수가 있다는 뜻인가?

입신入神의 경지에서 말을 하므로 말이 저절로 술술 나와 말에 흠잡을 데가 없게 되었다는 뜻인가?

초능력을 발휘하여 암산을 하기 때문에 계산기 같은 것이 없이도 척척 알아 낼 수 있다는 뜻인가?

옛날 훌륭한 목수는 대패로 널빤지를 밀어 두 널빤지를 맞붙이면 유리판을 두 장 맞붙일

때처럼 두 널빤지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완벽한 솜씨를 보였다는데 그런 식으로 문을 짜서

 빗장 없이도 열리지 않는 문이 된다는 뜻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단계를 넘어 도와 하나된 경지에 이르면 ‘나’라고

 하는 것은 없어지고 ‘도’만 있는 상태이므로 결국 내가 하는 모든 것은 도가 하는 일이 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에서 인공적이고 인위적인 흔적이나 흠은 사라져 버린다는 뜻이 아닐까?

성인은 이렇게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행동만을 하기 때문에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좋은 물건

 나쁜 물건으로 사람이나 사물을 차별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하고 어느 누구도, 어느 것도 무시하거나

버리는 일이 없다.

선한 사람에게는 잘 해주고 선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등을 돌린다거나, 좋은 물건은 아끼고

좋지 못한 물건은 버리는 사람은 아직 완벽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다.

아직도 의식적, 상식적, 일상적 차원에서 분별과 차별을 가지고 우리가 세워 놓은

규준規準에 따라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보통인의 차별주의적 단계를 넘어 모든 사람, 모든 사물을 한결같이 대하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습명襲明’이라 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여러 가지로 해석되지만 여기서는 ‘밝음을 터득함’이라 해 보았다. ‘명明’은

해와 달이 합한 글자로 해와 달이라는 두 개의 광원光源이 합했으므로 ‘밝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여기서는 해로 대표되는 양陽과 달로 대표되는

음陰이 합해서 불이不二의 조화스런 관계, 양극의 일치(coincidentia oppositorum)를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습명襲明’이란 사람이나 사물을 구할 것, 버릴 것으로 이분하는 대립적 의식

구조에서 탈피하여 이 둘을 불가분不可分, 불가결不可缺의 하나로 보는 총체적 안목의

 획득을 아울러 뜻한다고 풀이할 수도 있다.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師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런데 선하지 못한 사람이 선한 사람의 감資이 된다고 했을 때, 옷감이 없으면 옷이

 있을 수 없듯이 선하지 못한 사람이 없으면 선한 사람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인데 어째서 그럴까?

여러 가지 해답이 있겠으나, 도움을 주는 선한 일을 하려 해도 도움받을 사람이 없으면

 그 일을 할 수 없듯, 선한 사람이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선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뜻 아닐까?

선함은 선하지 못함이 있을 때 가능하다.

익충益蟲과 해충害蟲의 관계이다.

익충은 해충이 있을 때만 의미가 있다.

선함과 선하지 못함은 이처럼 둘이 떨어질 수 없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선한 사람을 귀히 여김과 동시에 선하지 못한 사람을 아낄 줄 아는 트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깊은 뜻을 모르고 어느 일면만을 추구하는 일은 지혜로운 것 같지만 미혹된 상태이다.

여기 바로 오묘한 신비의 이치가 있다는 것이다.

한글역

정말로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달린 자국을 남기지 않습니다.

정말로 잘하는 말에는 흠이나 티가 없습니다.

정말로 계산을 잘하는 사람에겐 계산기가 필요없습니다.

정말로 잘 닫힌 문은 빗장이 없어도 열리지 않습니다.

정말로 잘 맺어진 매듭은 졸라매지 않아도 풀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언제나 사람을 잘 도와 주고,

아무도 버리지 않습니다.

물건을 잘 아끼고, 아무것도 버리지 않습니다.

이를 일러 밝음을 터득함이라 합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요,

선하지 못한 사람은 선한 사람의 감資입니다.

스승을 귀히 여기지 못하는 사람이나,

감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비록 지혜롭다 자처하더라도 크게 미혹된 상태입니다.

이것이 바로 기막힌 신비입니다.

한문원문

善行無轍迹. 善言無瑕讁. 善數不用籌策. 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約而不可解.

  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 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故善人者, 不善人之師.

 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轍迹(철적) – 달린 자국.

瑕讁(하적) – 옥의 티나 흠.

籌策(주책) – 산가지. 옛날 셈하는 데 쓰던 물건.

關楗(관건) – 문빗장.

繩約(승약) – 끈으로 졸라맴.

영역

A truly good traveler leaves neither track nor trace.

A truly good speaker has neither flaws nor blemishes in speech.

A truly good counter uses neither tallies nor chips.

A truly well closed door needs neither bolt nor lock,

And yet it cannot be opened.

A truly well tied knot needs neither cord nor rope,

And yet it cannot be untied.

Therefore, the sages are always good at helping others,

And do not abandon any of them.

They are always good at saving resources,

And do not abandon any of them.

This is called “obtaining the inner light.”

Therefore, the good persons are the teachers for the bad,

And the bad are the material for the good.

Those who do not value the teachers or cherish the material,

Even though they may be learned,

Are greatly confused.

This is the essential mystery.

<현암사, 도덕경 (2010) 노자, 오강남 저>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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