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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마음의 양식/漢詩

田 家 /박지원(朴趾源)

지송나무 2015. 6. 26. 15:09

 

 

 

 

 
田  家            농삿집 풍경 
                                박지원(朴趾源)
                                      1737(영조13)~1805(순조5)
 
老翁守雀坐南陂  늙은이 새 지키려 언덕에 앉았건만

粟拖拘尾黃雀垂  개꼬리 조 이삭에 참새가 대롱대롱

長男中男皆出田  큰아들 작은아들 모두다 들에 가고

田家盡日晝掩扉  농가는 온 종일 사립이 닫혀 있네

鳶蹴鷄兒攫不得  소리개 병아리를 채려다 못 채가니

群鷄亂啼匏花籬  박꽃 핀 울 밑에선 놀란 닭들 요란하네

少婦戴권疑渡溪  함지 인 며느리는 돌다리를 조심조심

赤子黃犬相追隨  달랑달랑 따라가는 누렁이와 어린아이

 

 

한 폭 그림같은 시입니다.

 

 老翁守雀坐南陂

노옹(老翁), 늙은이, 노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농삿집의 시아버지입니다.

수작(守雀), 참새를 지킨다는 말입니다.

참새 떼가 곡식을 먹어치우기 때문에

긴 장대 같은 걸 들고 훠이훠이 새를 지킵니다.

좌남피(坐南陂), 남피는 남쪽 언덕,

좌남피, 남쪽 언덕에 앉아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남쪽 언덕이냐,

동쪽도 있고 북쪽도 있고 서쪽도 있지 않느냐?

남쪽 언덕이라 함은 산의 남쪽자락 언덕을 말합니다.

산의 남쪽 자락은 햇볕이 잘 드는 곳입니다.

늙은이, 노인네가 새를 쫓기 위해 앉아 있는 장소로는

남쪽 가을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곳이 제격입니다.

이 노인네는 반 쯤 졸면서 앉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남쪽언덕 언저리에 있는 양지바른 밭에

잘 영근 조 이삭이 있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은 드리워진 조 이삭에 대한 묘사입니다.

  

粟拖拘尾黃雀垂

속타구미(粟拖拘尾), 속(粟)은 조입니다.

일부 지방에서는 서숙, 서속이라고도 합니다.

서속은 기장과 조인데, 때로는 조만을 가리켜 말할 때도 씁니다.

타(拖)는 잡아끌다, 견제하다, 아래로 드리우다, 탈취하다,

시간을 끌다. 등등의 뜻이 있습니다.

구미는 개꼬리입니다. 조 이삭은 마치 개꼬리처럼 생겼습니다.

조 이삭이 개꼬리처럼 드리워져 있음을

조가 개꼬리를 드리웠다,

또는 조가 개꼬리를 질질 끌고 있다. 라고 묘사한 것입니다.

토실토실하고 노랗고 아래로 드리워져 있는 개꼬리로

조 이삭을 비유한 것입니다.

위로 치켜든 개꼬리는 해당사항 없습니다.

황작수(黃雀垂), 황작은 참새죠.

수(垂)는 드리워져 있다, 매달려 있다는 뜻이니까,

참새가 조 이삭에 매달려 있는 모습입니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놈도 있을 것이고

옆으로 매달려 있는 놈도 있을 것입니다.

가늘게 휘어진 조 이삭 목이

참새들 등쌀에 약간 휘청휘청 하는 것같습니다.

너무 많이 붙으면 어울리지 않으니

이삭 하나에는 한 마리나 두 마리 정도일 것입니다.

조 이삭을 부러뜨리지 않으려면

참새는 연신 날개짓을 해야 할 것입니다.

참새들은 장난도 치며 짹짹거리며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며 조를 쪼아대겠군요.

개꼬리처럼 드리워진 노란 조 이삭에

참새가 매달려 있는 그림입니다.

 

長男中男皆出田

장남(長男)은 큰아들이고 중남(中男)은 둘째아들입니다.

물론 삼형제 이상이면 중간에 있는 아들들 모두일 수도 있습니다.

개출전(皆出田), 모두 들에 농사일을 하러 나갔습니다.

아마도 추수를 하는가 봅니다.

논밭은 집에서 약간 멀리 있는 듯하고,

노인이 새를 지키는 곳은 집 근처 텃밭일 것입니다.

 

 田家盡日晝掩扉

전가(田家)는 농가(農家)입니다. 농사를 지어 먹고사는 집이죠.

진일(盡日), 날이 다하도록, 하루종일, 온종일.

주엄비(晝掩扉), 주(晝)는 낮, 엄비(掩扉)는 문을 닫다.

따라서 주엄비는 낮에 사립을 닫아놓았다는 뜻입니다.

원래 사립은 낮에는 열어두고 밤에 닫는 것인데,

집이 비어서 낮인데도 닫혀 있음을 말합니다.

 

鳶蹴鷄兒攫不得

연(鳶)은 소리개, 축계아(蹴鷄兒), 계아는 병아리.

축은 찬다는 뜻인데 발로 공을 차듯이 발길질을 함을 말하죠.

확(攫)은 나꿔챈다는 뜻이고, 부득(不得)은 이루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확부득, 나꿔챘는데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집 울타리 근처에는 모이를 찾아먹고 있는 닭 가족이 있습니다.

어미닭이 있고, 삐약거리며 따라다니는 귀여운 병아리떼가 있습니다.

소리개가 닭들을 발견하고 기회를 엿보다가

순간 수직 급강하를 해서 병아리 한 마리를 덮쳤습니다.

그러나 병아리는 용케 몸을 피해

소리개의 날카로운 발톱을 벗어났습니다.

  

群鷄亂啼匏花籬

군계(群鷄), 한 무리의 닭들이, 난제(亂啼), 어지러이 울어댑니다.

포화리(匏花籬), 포화는 박꽃이니까

박꽃이 피어 있는 울타리 아래에서

놀란 닭들이 울어대는 것입니다.

꼬꼬댁 꼬꼬꼬.. 시끄럽게 울어댑니다.

대개 박꽃은 밤에 핀다고 알려져 있죠?

박꽃 필 때 저녁 짓는다는 말이 있는 걸로 봐서

아마 오후 햇살이 서늘해지면 꽃이 피기 시작할 것입니다.

밤새 하얗게 피어 있다가 아침 햇살을 받고 집니다.

시기가 가을이니까, 지금 피어 있는 박꽃은 때늦게 핀 것이고,

일찍 핀 꽃들은 진작에 둥근 박이 되어 매달려 있을 것입니다.

 

婦戴권疑渡溪   권 = 木+卷.

소부(少婦)는 나이 어린 부인, 갓 시집온 며느리를 말하겠죠.

아마도 막내 며느리일 것으로 짐작됩니다.

큰며느리 둘째며느리는 이미 농사일을 하러 들판에 나갔을 것이고

점심을 준비해 나르거나 새참을 마련하는 일 등은

막내 며느리 몫일 것입니다.

대권(戴권), 권은 함지 같은 것입니다. 음식그릇을 담아 나르는 기구죠.

밥 함지, 또는 음식을 담는 소쿠리 정도로 생각하면 될 듯합니다.

나이 어린 며느리가 함지를 이고 들에 나갑니다.

아마도 오후 새참을 마련해 이고 가는 것 같습니다.

의도계(疑渡溪), 도계(渡溪)는 시내를 건너는 것입니다.

새참 함지를 이고 시내를 건너는데,

마음이 조심스럽습니다.

의(疑)는 조심조심 발을 떼어놓는 것을 표현한 글자입니다.

시내에 돌다리가 있다면 더 어울리겠죠.

함지를 이고 어린 며느리가 돌다리를 건너는데

미끄러지면 안 되니까 아주 발걸음이 조심스럽습니다.

 

 赤子黃犬相追隨

적자(赤子)는 어린이를 말합니다.

옷도 별로 걸치지 아니하고 나다니는 어린 아이입니다.

고추를 다 내놓고 다닐 정도 나이의 남자 아이가 연상됩니다.

황견(黃犬)은 누렁이, 털빛이 누런 개를 말합니다.

상추수(相追隨), 추수(追隨)는 뒤따르는 것,

서로 뒤따르다. 서로라는 것은

적자와 황견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기서는 적자와 황견이 주인 아주머니,

즉 아이의 엄마를 따라가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함지를 이고 가는 며느리, 즉 어린아이의 엄마를

아이와 그집 개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따라가는 것입니다.

--

이렇게 풀이를 해 놓고 다시 시를 읽어보면

한폭 시골풍경이 떠오릅니다.

곡식이 익은 가을,

양지쪽 햇볕이 따스한 오후,

맑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씨,

조 이삭과 참새,

닫힌 사립문,

노란색과 고요함의 어우러짐.

나른한 오후의 적막감을 깨는 긴장감,

소리개와 병아리,

평화와 공포, 소란.

새참을 이고 들에 가는 며느리,

돌다리를 건너는 조심스러움,

아이 하나와 노란 개 한 마리,

시내 저 너머로 멀리 이어져 있는 들길.

--

박지원은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미중(美仲),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 연상(煙湘), 열상외사(洌上外史) 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