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15.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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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전체 글 3678

김삿갓 (김병연 金炳淵, 金笠 ; 1807~1863) 방랑시인, 풍자시인

김삿갓 (김병연 金炳淵, 金笠 ; 1807~1863) 방랑시인, 풍자시인 때로는 흐뭇한 마음이 들게 하고 때로는 서글픈 인생살이의 비애를 맛보게 하며 곳곳에 재치와 해학이 넘치는가 하면, 기막힌 발상은 무릎을 치게 한다. 출생과 생애 조선후기 시인으로 자는 난고, 별호는 김삿갓 또는 김립(金..

[편집국에서] 정도전과 ‘불씨잡변’ / 고명섭

#1 [편집국에서] 정도전과 ‘불씨잡변’ / 고명섭 고명섭 오피니언부장 ★... 1375년 전라도 회진으로 유배를 당한 정도전(1342~1398)은 겨울 어느 날 ‘도깨비에게 사과하는 글’을 썼다. 사방이 을씨년스러운 날 방안에서 홀로 잠을 청하려는데 도깨비 떼가 들이닥쳐 울고 웃고 떠들어댔다. “왜 여기까지 와서 날 괴롭히느냐?” 방 주인이 소리치자 도깨비가 답했다. “인적 없는 이곳은 도깨비가 사는 곳이다. 그대는 사람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멀리 쫓겨났는데, 우리가 반겨 놀아주니 고마워해야 할 것 아닌가?” 고려 말 권신들의 발호에 할퀴인 젊은 유학자의 울분이 담긴 글이다. 정도전은 정계에 복귀하기까지 8년이나 더 유배·유랑 생활을 했다. 나라를 떠도는 동안 정도전은 왕도정치 이상을 실현할 새 나라의..

최영 [崔瑩] 장군

최영 [崔瑩] 장군 1316(충숙왕 3)~ 1388(우왕 14). 고려의 무신. 본관은 철원(鐵原). 수사공(守司空) 유청(惟淸)의 5대손으로, 아버지는 사헌규정(司憲糾正) 원직(元直)이다.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왜구를 토벌하여 그 공으로 우달치(于達赤:司門人)가 되었으며, 1352년(공민왕 1) 안우(安祐)·최원(崔源) 등과 조일신(趙日新)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호군(護軍)이 되었다. 1354년 대호군(大護軍)이 되었는데, 그해 원(元)나라에서 남정군(南征軍)을 요청하자, 유탁(柳濯)·염제신(廉悌臣) 등 40여 명의 장수 및 군사 2,000여 명이 함께 파견되어 원나라의 고우(高郵)·사주(四州) 등지에서 장사성(張士誠)의 난군을 토평하고 이듬해 귀국했다. 1356년 공민왕..

고려의 문신·학자.해동공자 최충(崔沖)

해동공자 최충(崔沖) 984(성종 3)~ 1068(문종 22). 고려의 문신·학자. 최충 9재학당(九齋學堂)을 세워 유학을 보급하고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문교(文敎)의 진흥과 사학(私學) 발전에 크게 공헌하여 해동공자(海東孔子)로 칭송되었다.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호연(浩然), 호는 성재(惺齋)·월포(月圃)·방회재(放晦齋). 아버지는 주(州) 향리인 온(溫)이다. 1005년(목종 8)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1011년(현종 2) 우습유(右拾遺)가 되었다. 1013년 국사수찬관(國史修撰官)이 되어 태조에서 목종에 이르는 〈칠대실록 七代實錄〉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다. 그뒤 우보궐(右輔闕)·한림학사(翰林學士)·예부시랑(禮部侍郞) 등을 역임했다. 1033년(덕종 2)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를 거쳐 동지중추원사..

포은(圃隱). 정몽주 [鄭夢周]

정몽주 [鄭夢周] 1337(충숙왕 복위 6)~ 1392(공양왕 4). 고려 말기의 학자·정치가. 정몽주 본관은 영일(迎日). 초명은 몽란(夢蘭)·몽룡(夢龍).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인종 때 지주사(知奏事)를 지낸 습명(襲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성균관 복응재생(服膺齋生) 운관(云瓘)이다. 〈영일정씨세보〉에 의하면 아버지나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가 산직(散職)인 동정직(同正職)과 검교직(檢校職)을 지냈는데, 이는 그의 집안이 지방에 거주하는 한미한 사족이었음을 보여준다. 1360년(공민왕 9) 김득배(金得培)가 지공거, 한방신(韓邦信)이 동지공거인 문과에 응시, 삼장(三場)에서 연이어 첫자리를 차지해 제1인자로 뽑혔다. 1362년 예문검열이 되었다. 이때 김득배가 친원파인 김용(金鏞)의..

양사언(楊士彦)과 그의 어머니

양사언(楊士彦)과 그의 어머니 다 태산이 높다 하되... 泰山雖高是亦山(태산수고시역산)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登登不已有何難(등등불이유하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世人不肯勞身力(세인불긍노신력)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只道山高不可攀(지도산고불가반)뫼만 높다 하더라. 이 시는 우리가 알기로는양사언이모든 일에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다는 교훈 조 詩(시)로만 알고 있었는데 깊은 내력을 살펴 보니 처절하게 살다간 어머니를 그리는 시라는 해석이 KBS역사 이야기에서 밝혀졌다. . 우리들도 익히 알고 있는 栗谷(율곡)과 신사임당. 만호 한석봉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 모르는 분들이 없을 것이다. 아들을 훌륭하게 키운 대표적 한민족의 어머니이리라. 그러나 "양사언과 그의..

흥신 김유신(金庾信, 595~673)

흥신 김유신(金庾信, 595~673)은 595년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멸망한 가야 왕손으로 증조 할아버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이며, 할아버지는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무력이다.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이다. 가야의 왕손, 망국의 후예로 자라다 김서현이 길에서 만명을 보고 사랑하여 중매를 거치지 않고 부부관계를 맺었는데, 이를 안 숙흘종이 딸을 가두어놓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신라 왕실의 일원이었던 만명과 가야계였던 김서현과의 혼인은 당시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려운 결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벼락이 집 문을 쳐서 지키던 사람이 혼비백산한 틈에 만명은 빠져나가, 만노군 태수로 부임하던 김서현을 따라갔다고 한..

해동공자 최충 고려시대 명재상

해동공자 최충 고려시대 명재상 해동공자 최충 고려시대 명재상 '최충' 거란의 침략을 물리친 현종대를 거쳐 덕종, 정종, 문종에 이른 태평성대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은 이른바 유학의 융성이다. 이 시기 유학이 융성하게 된 것은 과거제의 시행에다 성종대 이후 유교적 정치이념이 채용되어 유학자들이 꾸준히 배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충 같은 인물에 의해 사학의 기풍이 진작되어 후진들이 본격적으로 양성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문종대 사학을 진흥시켜 고려 유학을 꽃피우게 한 최충은 984년 해주 최씨 최온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자는 호연이다. 부친인 최온은 향리 출신으로 해주 최씨 시조로도 올라 있을 정도로 문행이 뛰어났던 인문이다. 따라서 문무를 겸비한 최충의 호학적 태도..

선덕여왕

선덕여왕 ?∼647(선덕여왕 16). 신라 제27대왕. 재위 632∼64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진평왕의 장녀로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그를 왕위에 추대하고, 성조황고(聖祖皇姑)란 호를 올렸다고 한다. 즉, 선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고 하는 특수한 왕족의식이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즉위하던 해인 632년에 대신 을제(乙祭)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하게 하고, 전국에 관원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진휼(賑恤)하였으며, 633년(선덕여왕 2)에는 주군(州郡)의 조세를 일년간 면제해주는 등 일련의 시책으로 민심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634년에 분황사(芬皇寺)를, 635년에는 영묘사(靈廟寺)를 세웠다. 한편, 대외적..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고려 말의 정국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고려 정계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개혁의 의지는 고려왕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자는 쪽과, 모든 것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역성혁명을 도모하는 세력으로 나뉘었다. 역성혁명의 중심에는 고려 말 급부상한 신흥무장 세력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와 그와 뜻을 같이한 급진파 신진사대부들이 있었다. 신진사대부들과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이성계는 이전의 고려와는 다른 새로운 성격의 나라, 조선왕조를 열었다. 반원정책의 물살을 타고 고려의 중앙 무대로 이성계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시기부터 급부상한 신흥 무장 세력이었다. 그는 고려의 중앙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라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쌍..

태종 이방원의 업적

태종 이방원의 업적 조선 건국 역사의 주역 태종 太宗 [1367~1422] 호사가(好事家)들이 태종 이방원을 평하기를 지나친 정권에 대한 욕심으로 인륜을 저버렸다고 말하지만 혼란한 변혁기를 겪는 과정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이해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버려야만이 태종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처절한 정치세계의 냉혹함 속에서 어설픈 감상주의는 금물이다. 동양의 역사만이 아니고 서양의 역사를 비롯한 세계의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한나라의 그같은 일은 세상사의 비일비재한 일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잡아 먹히고 먹어야하는 동물의 처절한 생존의 법칙만큼이나 음모와 술수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오직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러한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

떡갈비와 무등산옛길이 어우러진 맛있는 봄나들이

떡갈비와 무등산옛길이 어우러진 맛있는 봄나들이 조선일보 | 트래블조선 위 치 :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로 타다닥타다닥. 광주송정역 인근 떡갈비골목의 아침은 경쾌한 도마 소리로 시작한다. 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식당마다 풍기는 고소하고 기름진 냄새에 코가 절로 벌름거려진다. 광주오미 중 하나로 꼽히는 송정 떡갈비는 봄철 나들이를 즐기며 맛보기 좋은 별미다. 최근 용산역에서 광주송정역까지 KTX가 연결되면서 광주 여행과 더불어 송정 떡갈비골목을 찾는 여행자들이 부쩍 늘었다. 송정 떡갈비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일반적인 떡갈비와 다르다. 보통 떡갈비 하면 소고기를 떠올리지만, 이곳은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섞어 만든다. 원래 송정 떡갈비도 소고기를 이용하다가 1990년대 후반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재료비가 인상되자, 음..

[스크랩] 청렴, 검소, 절제 생전의 최규하 대통령을 다시 만나다.

서울시에서는 2009년 7월 의 영구보존을 위해 유족측으로부터 가옥을 매입해 2010년 10월, 가옥의 정밀 안전진단 및 복원설계를 완료하고, 현재 본격적으로 복원공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1년 12월까지는 복원을 완료하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할 예정입니다. ▶ 최규하 대통령 가옥 현황 - 등록문화재 제 413호 ○ 소 재 지 : 마포구 서교동 467-5 ○ 규 모 : 【부지】 359.7㎡ 【건물】 연와조 세멘와즙 1동(지하1층․지상2층/총면적 330.05㎡)○ 건립연대 : 1972년 ○ 등 록 일 : 2008.10.10 ○ 소 유 자 : 서울특별시(2009년 7월 매입) ▶ 이 가옥은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최규하 전 대통령(1919. 7.16~2006.10.22)이 청와대 외교특보시절인..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독재자라 많이 폄하받고도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 역대대통령들중 제일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2008년 건국60주년 국민여론조사 그래프) 우리나라 부국 대통령으로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이라는 유례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역대 대통령의 자질로서 비전 제시, 인사 관리, 위기 관리, 민주적 정책 결정 및 실행, 도덕성 등 5가지에 걸쳐 100점 만점으로 하고 가중치도 계산했다. 그 결과 종합점수로 매긴 순위로는 박정희(62.70점), 김대중(58.45점), 이승만(56.95점), 김영삼(56.04) 순이고, 특히 박정희는 비전 제시 능력, 인사 관리 능력, 위기 관리 능력에서 1위를 차지하고, 김영삼은 민주적 정책 결정과 실행능력에서 1위를 차지한다..

[임기상의 역사산책 34]'여자 안중근' 남자현, 조선독립을 위해 총을 들다

[임기상의 역사산책 34]'여자 안중근' 남자현, 조선독립을 위해 총을 들다 ◈ 61세의 여인 '남자현', 만주국의 실세 '부토 노부유시' 처단에 나서다 일제가 조선에 이어 만주를 침공한 후 2년 후인 1933년 2월 27일 오후 3시 45분. 하얼빈의 도의정양가 거리에 '삐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호각소리..

중국서 위상 높아진 '영웅' 안중근 의사

중국서 위상 높아진 '영웅' 안중근 의사 돈독해진 한중관계 속 추모 열기 고조…현지 유해 발굴 노력 지속 (다롄=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을 맞은 올해 안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중국 현지에서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안 의사의 의거 장소인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역에 표지석을 설치해 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지난 1월 기념관 건립이라는 '통 큰 선물'로 화답했다. 안 의사 기념관 건립이 일본은 물론 북한까지도 의식해야 하는 민감한 사업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결단'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부쩍 돈독해진 한중관계가 자리 잡은 것으로..

이승만 대통령 장례식에 보낸 박정희 대통령의조사

조사는 메일끝 부분에 실려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장례식에 보낸 박정희 대통령의조사 <편집자 주> 1965년 7월19일 0시 35분, 건국 대통령 李承晩 박사가 하와이 마우날라니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1960년 4·19 학생시위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휴가차 5월29일 하와이를 방..

'살아있는 영웅' 백선엽 장군을 스스로 비하하는 나라

'살아있는 영웅' 백선엽 장군을 스스로 비하하는 나라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전쟁 영웅’을 스스로 비하(卑下)하는 나라는?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입력 : 2013.05.06 03:03 백선엽 장군 명예원수 재추대론 또 물거품 되나?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지난해 10월, 31세의 민족문제연구소 출신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할아버지뻘인 백선엽 장군(白善燁·예비역 육군대장)을 ‘민족 반역자’로 매도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습니다. 그 백선엽 장군은 1920년 10월 생으로 올해 94세인데, 걸음걸이나 기억력을 보면 절대 ‘노인’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도 아침 8시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6·25전사편찬자문위원장실로 출근합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 군 관련 인사들의 예방 일정들이 화이트보드에 빼곡합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