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2015. 0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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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지친 水魚之親 TISTORY

■ 세계로 미래로/한국의 인물 71

흥신 김유신(金庾信, 595~673)

흥신 김유신(金庾信, 595~673)은 595년 아버지 김서현과 어머니 만명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멸망한 가야 왕손으로 증조 할아버지는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해이며, 할아버지는 관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김무력이다. 어머니인 만명부인은 진흥왕의 아우인 숙흘종의 딸이다. 가야의 왕손, 망국의 후예로 자라다 김서현이 길에서 만명을 보고 사랑하여 중매를 거치지 않고 부부관계를 맺었는데, 이를 안 숙흘종이 딸을 가두어놓고 사람을 시켜 지키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것을 보면, 신라 왕실의 일원이었던 만명과 가야계였던 김서현과의 혼인은 당시 사회적으로 용납받기 어려운 결합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벼락이 집 문을 쳐서 지키던 사람이 혼비백산한 틈에 만명은 빠져나가, 만노군 태수로 부임하던 김서현을 따라갔다고 한..

해동공자 최충 고려시대 명재상

해동공자 최충 고려시대 명재상 해동공자 최충 고려시대 명재상 '최충' 거란의 침략을 물리친 현종대를 거쳐 덕종, 정종, 문종에 이른 태평성대에 있어 또 하나 중요한 사건은 이른바 유학의 융성이다. 이 시기 유학이 융성하게 된 것은 과거제의 시행에다 성종대 이후 유교적 정치이념이 채용되어 유학자들이 꾸준히 배출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최충 같은 인물에 의해 사학의 기풍이 진작되어 후진들이 본격적으로 양성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였다. 문종대 사학을 진흥시켜 고려 유학을 꽃피우게 한 최충은 984년 해주 최씨 최온의 아들로 출생하였으며 자는 호연이다. 부친인 최온은 향리 출신으로 해주 최씨 시조로도 올라 있을 정도로 문행이 뛰어났던 인문이다. 따라서 문무를 겸비한 최충의 호학적 태도..

선덕여왕

선덕여왕 ?∼647(선덕여왕 16). 신라 제27대왕. 재위 632∼647. 성은 김씨(金氏). 이름은 덕만(德曼)이다. 진평왕의 장녀로 어머니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화백회의(和白會議)에서 그를 왕위에 추대하고, 성조황고(聖祖皇姑)란 호를 올렸다고 한다. 즉, 선덕여왕이 즉위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골’이라고 하는 특수한 왕족의식이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즉위하던 해인 632년에 대신 을제(乙祭)로 하여금 국정을 총괄하게 하고, 전국에 관원을 파견하여 백성들을 진휼(賑恤)하였으며, 633년(선덕여왕 2)에는 주군(州郡)의 조세를 일년간 면제해주는 등 일련의 시책으로 민심을 수습하였다. 그리고 634년에 분황사(芬皇寺)를, 635년에는 영묘사(靈廟寺)를 세웠다. 한편, 대외적..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

안팎으로 혼란스러운 고려 말의 정국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고려 정계의 내부에서부터 시작된 개혁의 의지는 고려왕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혁을 하자는 쪽과, 모든 것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역성혁명을 도모하는 세력으로 나뉘었다. 역성혁명의 중심에는 고려 말 급부상한 신흥무장 세력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재위: 1392~1398)와 그와 뜻을 같이한 급진파 신진사대부들이 있었다. 신진사대부들과 함께 고려 왕조를 무너뜨린 이성계는 이전의 고려와는 다른 새로운 성격의 나라, 조선왕조를 열었다. 반원정책의 물살을 타고 고려의 중앙 무대로 이성계는 고려 공민왕(恭愍王, 1330~1374) 시기부터 급부상한 신흥 무장 세력이었다. 그는 고려의 중앙 귀족 가문 출신이 아니라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쌍..

태종 이방원의 업적

태종 이방원의 업적 조선 건국 역사의 주역 태종 太宗 [1367~1422] 호사가(好事家)들이 태종 이방원을 평하기를 지나친 정권에 대한 욕심으로 인륜을 저버렸다고 말하지만 혼란한 변혁기를 겪는 과정에서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상황들을 이해하고 잘못된 선입견을 버려야만이 태종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하는 처절한 정치세계의 냉혹함 속에서 어설픈 감상주의는 금물이다. 동양의 역사만이 아니고 서양의 역사를 비롯한 세계의 어느 역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 한나라의 그같은 일은 세상사의 비일비재한 일중에 하나이다. 그것은 잡아 먹히고 먹어야하는 동물의 처절한 생존의 법칙만큼이나 음모와 술수가 판을 치는 세계에서 오직 살기 위한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이제 그러한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에..

[스크랩] 청렴, 검소, 절제 생전의 최규하 대통령을 다시 만나다.

서울시에서는 2009년 7월 의 영구보존을 위해 유족측으로부터 가옥을 매입해 2010년 10월, 가옥의 정밀 안전진단 및 복원설계를 완료하고, 현재 본격적으로 복원공사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2011년 12월까지는 복원을 완료하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개방할 예정입니다. ▶ 최규하 대통령 가옥 현황 - 등록문화재 제 413호 ○ 소 재 지 : 마포구 서교동 467-5 ○ 규 모 : 【부지】 359.7㎡ 【건물】 연와조 세멘와즙 1동(지하1층․지상2층/총면적 330.05㎡)○ 건립연대 : 1972년 ○ 등 록 일 : 2008.10.10 ○ 소 유 자 : 서울특별시(2009년 7월 매입) ▶ 이 가옥은 최규하 대통령 가옥은 최규하 전 대통령(1919. 7.16~2006.10.22)이 청와대 외교특보시절인..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박정희 대통령의 업적 독재자라 많이 폄하받고도 있는 동시에 우리나라 역대대통령들중 제일 국민들의 많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2008년 건국60주년 국민여론조사 그래프) 우리나라 부국 대통령으로 산업화를 통해 '한강의 기적'이라는 유례가 없는 경제발전을 이룩한 박정희 대통령 '역대 대통령의 자질로서 비전 제시, 인사 관리, 위기 관리, 민주적 정책 결정 및 실행, 도덕성 등 5가지에 걸쳐 100점 만점으로 하고 가중치도 계산했다. 그 결과 종합점수로 매긴 순위로는 박정희(62.70점), 김대중(58.45점), 이승만(56.95점), 김영삼(56.04) 순이고, 특히 박정희는 비전 제시 능력, 인사 관리 능력, 위기 관리 능력에서 1위를 차지하고, 김영삼은 민주적 정책 결정과 실행능력에서 1위를 차지한다..

[임기상의 역사산책 34]'여자 안중근' 남자현, 조선독립을 위해 총을 들다

[임기상의 역사산책 34]'여자 안중근' 남자현, 조선독립을 위해 총을 들다 ◈ 61세의 여인 '남자현', 만주국의 실세 '부토 노부유시' 처단에 나서다 일제가 조선에 이어 만주를 침공한 후 2년 후인 1933년 2월 27일 오후 3시 45분. 하얼빈의 도의정양가 거리에 '삐이이익~' 바람을 가르는 호각소리..

중국서 위상 높아진 '영웅' 안중근 의사

중국서 위상 높아진 '영웅' 안중근 의사 돈독해진 한중관계 속 추모 열기 고조…현지 유해 발굴 노력 지속 (다롄=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안중근 의사 순국 104주년을 맞은 올해 안 의사가 일제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간 중국 현지에서는 그의 숭고한 정신을 되새기는 움직임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안 의사의 의거 장소인 헤이룽장성 하얼빈(哈爾濱)역에 표지석을 설치해 달라는 우리 정부의 요청에 지난 1월 기념관 건립이라는 '통 큰 선물'로 화답했다. 안 의사 기념관 건립이 일본은 물론 북한까지도 의식해야 하는 민감한 사업인 점을 고려하면 중국의 '결단'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부쩍 돈독해진 한중관계가 자리 잡은 것으로..

이승만 대통령 장례식에 보낸 박정희 대통령의조사

조사는 메일끝 부분에 실려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장례식에 보낸 박정희 대통령의조사 <편집자 주> 1965년 7월19일 0시 35분, 건국 대통령 李承晩 박사가 하와이 마우날라니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1960년 4·19 학생시위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휴가차 5월29일 하와이를 방..

'살아있는 영웅' 백선엽 장군을 스스로 비하하는 나라

'살아있는 영웅' 백선엽 장군을 스스로 비하하는 나라 지구상에서 ‘살아있는 전쟁 영웅’을 스스로 비하(卑下)하는 나라는?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입력 : 2013.05.06 03:03 백선엽 장군 명예원수 재추대론 또 물거품 되나? 오동룡 월간조선 차장 지난해 10월, 31세의 민족문제연구소 출신 민주당 김광진 의원이 할아버지뻘인 백선엽 장군(白善燁·예비역 육군대장)을 ‘민족 반역자’로 매도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습니다. 그 백선엽 장군은 1920년 10월 생으로 올해 94세인데, 걸음걸이나 기억력을 보면 절대 ‘노인’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도 아침 8시면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 있는 6·25전사편찬자문위원장실로 출근합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해외 군 관련 인사들의 예방 일정들이 화이트보드에 빼곡합니다. 이..

우리나라 3대 영웅

우리나라 3대 영웅 올해는 이병철 탄생 100주년, 박정희 93년, 정주영 95년, 동시 탄생,민족 행운의 7년 몇 백년에 한 명 나올 영웅 세 사람이 거의 동 시에 태어나서,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들었다 이를 제대로 평가 해야한다 올해가 이병철 삼성 창업주 탄생 100주년이다, 기념행사가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최근 본 뉴스들을 떠올렸다, 올해 우리나라 무역흑자가 일본을 훌쩍 넘었다, 필자의 기억 속에서 일본은 감히 넘보지 못할 무역 흑자대국이었다, 금융위기후의 특수한 사정 탓이 겠지만 식민지였던 우리가 이 흑자대국을 한번 이라도 앞서는 일은 필자의 생애에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다 런던에서 팔리는 전자제품의 30%가 삼성전자 제품이고, 지금 미국에서 가장 성장하는 자동차 회사는 현대자동차다, 모두 ..

김좌진의 생애와 업적

김좌진의 생애와 업적 김좌진 (1889.11.24(음)~1930.1.24) 1. 생애와 업적 출생-사망 1889년 11월 24일 (충청남도 홍성) - 1930년 1월 24일가족 손녀 김을동, 아들 김두한수상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경력 1930 중국 길림성 영안현 중동 노산시역 자택에서 고려공산청년회원 1929 한족총연합회(신민부 후신) 주석 1925 성동사관학교 설립 1925 영안에서 신민부조직, 군사집행위원장 * 연표 1889년 음력 11월 24일: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행산리 출생 1904년 - 해주 오씨 오숙근과 결혼 1905년 - 서울로 올라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 입학. 같은 해, 가노 해방 및 전답 무상 분배 1907년 - 호명학교 설립. 가산을 정리하여 학교 운영에 충당하게 ..

유관순(柳寬順) 선생

“만국이 평화를 주장하는 금일을 당하야 (…) 우리도 비록 규중에 생활하여 지식이 몽매하고 신체가 연약한 아녀자 무리나 국민 됨은 일반이요 양심은 한가지라 (…) 우리는 아무 주저할 것 없으며 두려워할 것도 없도다. 살아서 독립기(獨立旗) 하에 활발한 신국민이 되어 보고 죽어서 구천지하에 이러한 여러 선생을 좇아 수괴(羞愧)함이 없이 즐겁게 모시는 것이 우리의 제일의무가 아닌가. 간장에서 솟는 눈물과 충곡(衷曲)에서 나오는 단심으로써 우리 사랑하는 대한 동포에게 엎드려 고하노니 동포! 동포여! 때는 두 번 이르지 아니하고 일은 지나면 못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3․1운동 시기 발표된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중에서- 계몽운동가였던 아버지 밑에서 민족의식을 함양 유관순(柳寬順) 선생은 1902년 11월 17..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 6. 21~1932. 12. 19) 의사

19세의 나이에 이미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든 의사는 야학당을 개설하여 한글 교육 등 문맹퇴치와 민족의식 고취에 심혈을 기울였다. 하지만 계몽운동만으로는 독립을 이룰 수 없다는 한계를 인식하고 중국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백범 김구를 만난 의사는 의열투쟁에 뜻을 모으고 한인애국단에 가입, 김구와 함께 홍구공원 거사를 계획한다. 의사의 의거는 널리 알려져 중국의 한인독립운동 지원과 임시정부의 활성화 등 이후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의사는 25세의 나이로 순국한다. 농촌계몽운동에 뛰어들다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 1908. 6. 21~1932. 12. 19) 의사는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부친 윤황(尹墴)과 모친 김원상(金元祥) 사이의 5남 2녀 중 장남으로 태..

이순신 장군의 명언

이순신 장군의 명언 집안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나는 몰락한 역적의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 때문에 외갓집에서 자라났다. 머리가 나쁘다 말하지 마라. 나는 첫 시험에서 낙방하고 서른 둘의 늦은 나이에 겨우 과거에 급제했다. 좋은 직위가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라. 나는 14년 동안 변방 오지의 말단 수비장교로 돌았다. 윗사람의 지시라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 말라 . 나는 불의한 직속 상관들과의 불화로 몇 차례나 파면과 불이익을 받았다. 몸이 약하다고 고민 하지 마라. 나는 평생동안 고질적인 위장병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았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라 . 나는 적군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진 후 마흔 일곱에 제독이 되었다. 조직의 지원이 없다고 실망하지 마라 . 나는 스스로 논밭을 갈아 군자금을 ..